월급봉투와 '공동체 의식'

사장님은 가게 문을 일찍 닫자고 하시더니 일하던 알바생들을 모두 불러 같이 고기나 굽자고 하셨다. 불안한 예감이 스쳤지만 사장님이 소고기를 내 오셨던 것에 휩쓸려(...) 다 잊어 버리고 또래 알바생들과 신나게 소고기를 구워먹고 술도 마시던 중 사장님이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닫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달 월급이라며 우리들에게 봉투 한 장씩을 쥐어주셨다. 늘상 은행으로 입금이 되었던 돈인데 이번만큼은 꼭 '월급봉투'를 주고 싶었단다. 한 국회의원이 '알바비 떼여도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의식' 이라고 했다. 글쎄, 나는 태어나서 그 월급봉투를 받았던 순간만큼 공동체 의식을 느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2017-07-26     김현성
ⓒalexkich via Getty Images

아메리카노 로동' 보다 조금 더 전의 일인데, 나는 군에 입대하기 전 삼성동의 어느 고깃집에서 일을 한 적이 잠시 있었다. 고깃집 알바가 늘 그렇듯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불을 넣고 빼다가 화상을 입을 뻔한 적도 있었고, 술 취한 손님에게 맞을 뻔한 적도 있었고 뭐 다들 겪을 법한 일들을 겪고 그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번도 월급을 떼인 적이 없었다. 장사가 어려운 것이 내가 봐도 티가 났지만 한 번도 사장님은 급여를 가지고 티를 내신 적이 없으며, 내가 불 옆에 오래 놓여 있던 쇠집게를 잘못 집어 한쪽 손을 크게 다칠 뻔했을 때 다 팽개치고 달려와 응급처치로 손에 치약을 발라 주신 분은(실제로 치약은 효능이 있다.) 다른 알바생도 아니고 사모님이었다.

미안하다. 제 2의 인생 열심히 잘 살아 보려고 했고, 내가 또 사람 써 본 적 있는 사람인데, 월급 그 돈 그거 내가 좀 내사정 어렵다고 주는 거 미루는 거 나는 쉽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피 말리는 것 알아서 여태껏 티를 안 냈다. 그런데 도저히 영업이 잘 되지 않아 이제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 자식 같은 너희들 데리고 지내온 시간 너무 뼈아프게 사무칠 것 같지만 어떡하냐, 사장이 능력이 없어서 너희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리고는 그달 월급이라며 우리들에게 봉투 한 장씩을 쥐어주셨다. 늘상 은행으로 입금이 되었던 돈인데 이번만큼은 꼭 '월급봉투'를 주고 싶었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사장님은 그때 이미 가게를 다 처분하시고 나셔도 빚이 많으셔서 급여는커녕 당장 이자 갚기에도 힘드신 상태였다고 한다. 봉투 안에는 만 원짜리 새 돈이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이자 독촉당하기도 바쁠 은행에 가서 어떻게 새 돈을 바꿔 오실 생각을 하셨을지.... 우리는 말없이 고기만 우적우적 씹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울기 시작했다.

한 국회의원이 '알바비 떼여도 신고하지 않는 것이 공동체 의식' 이라고 했다. 글쎄, 나는 태어나서 그 월급봉투를 받았던 순간만큼 공동체 의식을 느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