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100명의 손석희가 있다

1987년 3월 8일은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고 외치며 분신을 시도한 노동자 표정두 씨가 사망한 날입니다. 그날 MBC 〈뉴스데스크〉의 첫 꼭지 주인공은 흑두루미입니다. 리포트 제목은 "흑두루미의 번식과 이동에 대한 생태 조사", 앵커는 손석희였고요. 19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MBC는 1988년 방송사상 첫 파업을 벌이고 공정 방송 쟁취 투쟁에 나섭니다. 1990년 노조 집행부로서 농성에 나서던 손석희 아나운서는 당시 이런 말을 합니다. "부끄럽게도 역사의 반복을 믿는 우리는 6월 민중항쟁에 무임승차했다는 원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싸움의 몸짓을 계속해야 한다."

2017-07-13     김민식
ⓒMBC 노조 자료사진

"민식아, MBC에서 버티지 말고 나와. JTBC에 오면 프로그램 할 수 있어."

"아이고, 선배님. 중앙일보에서 저 같은 노동조합 집행부 출신 PD를 받아줄까요?"

저는 일류가 아니라 힘들 것 같다고 눙쳤습니다. MBC에서 핍박을 당하며 살지언정 종편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리고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세월호 정국과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거치며, JTBC 뉴스는 종편 방송에서 국민의 방송으로 자리매김했고요. MBC 뉴스는 급전 추락하여 '기레기' 뉴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JTBC 뉴스의 화려한 비상은, 일류 중의 일류, 손석희라는 걸출한 언론인 덕분이지요. 미디어오늘의 정철운 기자가 쓴 〈손석희 저널리즘〉(정철운 / 메디치)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왜 나는 손석희의 저널리즘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무모한 짓'을 감행해야만 했던가.

(〈손석희 저널리즘〉 4쪽)

"부끄럽게도 역사의 반복을 믿는 우리는 6월 민중항쟁에 무임승차했다는 원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라도 싸움의 몸짓을 계속해야 한다."

"왜 노조를 하는가,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입니다. 노조를 안 할 수 있는 명분이 없습니다.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식, 소시민적 도덕성을 지키려고만 해도 노조 활동은 불가피합니다. 이게 우리 방송 현실의 비극인데, 거기에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한다는 우리 직업의 특수성이 더해집니다. 노조만이 유일하고 합법적인 선택이지요."

JTBC가 손석희를 영입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MB의 방송 장악 이후 지난 몇 년간, 지상파 3사, 종편 4사, 보도채널 2사 등 총 9개 채널의 뉴스의 톤이 다 똑같았어요. 2012년의 대선 결과는 52대 48이었으나, 9개의 방송은 모두 52만 대변하고 있었던 거지요. 48에 속했던 사람들은 아예 뉴스를 안 보거나, 대안 방송을 찾거나, 팟캐스트로 옮겨 갔어요. 이런 상황에서 48을 대변하는 방송이 나온다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때 김재철 이하 MBC 경영진은 라디오 최고 시사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 제작진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모멸감을 줍니다. JTBC가 이때 손석희를 부릅니다. 망가진 MBC에서 나오라고. JTBC는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추구했기에 손석희를 영입한 게 아니라,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자본의 속성상 일류 언론인 손석희를 스카우트한 겁니다. 그 결정이 대박으로 이어졌고요.

'2017년 3월 새 사장으로 선출된 김장겸은 김재철 체제에서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맡은 인물로, 그의 등장은 극우 보수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자임해온 MBC의 존속을 의미했다. 김장겸 MBC 체제의 최종 목적은 MBC 정상화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이 MBC를 욕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촛불 혁명 이후 많은 시민들이 MBC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3대 적폐 세력 중 하나로 지목된 언론, 그중에서 지난 5년 가장 큰 나락의 수렁에 빠진 MBC,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안에서 싸움이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뭐라도 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공짜로 즐기는 세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