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산후우울증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호르몬 변화나 신체 변화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독박육아와 경력단절도 큰 원인입니다. 육아 자체도 힘들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자아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우울감이 생기는 거죠. 육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우울하고요. 산후우울증은 단지 엄마여서, 여자여서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 기억에 남편은 꽤 오랜 기간 산후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우울감인지 우울증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제가 곁에서 느끼기에는 정말 딴사람이 된 것 같았죠. 제가 아무리 남편의 기분을 살핀다 한들, 남편의 독박육아를 해소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오래도록 혼자 아파야 했습니다.

2017-07-10     장하나

[장하나의 엄마 정치] ⑧ 남편의 산후우울증

두리 아빠가 혼자 두리를 돌보던 날, 한 어린이 놀이시설 사물함에 두리가 숨어 있다.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지옥문이 열리다

돌이켜보면 두리가 태어난 그해 여름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랭보의 시집처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라고 부를 만하죠. 가사와 육아를 혼자 다 하는 게 너무 힘들었고, 대화할 사람이 없는 건 더 힘들었습니다. 산후도우미나 가사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하기에는 비용도 엄두가 안 나고, 가뜩이나 좁고 더운 집에 타인을 부르는 게 싫었죠. 게다가 저는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관장하는 성격이라서, 타인과 집안일을 나누는 것도 부담됐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걸' 하고 후회하고 있죠. 저는 도우미분에게 아이를 맡기고 잠깐 나가는 것도 마음이 안 놓였고,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독박육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저도 산후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독박육아는 하지 않고, 엄마아빠가 주 3일씩 나눠 두리를 돌보고 있습니다(장하나 전 의원은 환경운동연합으로 일주일에 사흘 출근하는 반상근 근무를 하고 있고, 남편인 점좀빼 사진가는 장 전 의원이 출근하는 날 카메라를 놓고 집에서 두리를 키웁니다). 제도적인 뒷받침 없이 평등육아를 강행하다보니 일단 경제적인 문제가 닥치고, 일의 연속성이나 자아실현 면에서 만족할 수준은 아닙니다.

그림자 존재, 전업주부

최근에는 수족구에 걸린 어린이집 교사가 출근을 했다는 충격적인 기사를 봤는데, 사실 그 교사도 아픈 몸으로 출근하고 싶었겠어요?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 하는데 근무조건은 열악하고, 교사 인력도 부족하고, 대체교사도 없고 그래서 원치 않는 출근을 한 것으로 보여요. 쥐꼬리만한 보육 예산을 편성한 정부의 책임이겠죠. 어린이집 교사의 노동권이 무너지니까 결국 또 아이들이 아프고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겁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모성본능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일인 줄 알았는데, 엄마 역할을 해보니 엄마라는 직업(일)은 전문적이고 너무 배울 게 많아요. 그러나 소위 전업주부라고 불리는 존재들은 이 사회에서 그림자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구조적으로 은폐된 존재 같아요. 가사노동이라는 말도 최근에 와서 쓰이고 있지만 아직도 집안일, 애 보는 일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육아만한 중노동이 없는데 말이죠.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호르몬 변화나 신체 변화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독박육아와 경력단절도 큰 원인입니다. 육아 자체도 힘들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자아를 상실하는 과정에서 우울감이 생기는 거죠. 육아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도 우울하고요.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아이가 이쁘게 자라나는 이야기,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넘쳐나지만 사실 엄마들은 너무 힘들어요.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면 마치 모성애가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말도 못 꺼내는 것 같습니다.

남편 얼굴에서 사라진 웃음

남편은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지만, 제 기억에 남편은 꽤 오랜 기간 산후우울증을 겪었습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일 것 같아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미안했지만, 남편은 고맙게도 담담하게 속내를 꺼냈습니다.

저는 아이를 낳고 닷새 만에 본회의에 출석했습니다. 2015년 2월 당시 이완구 총리 후보의 임명동의안에 반대 표결을 하려고 남편 몰래 조산원을 빠져나왔죠. 결국 7표가 모자라서 인준안은 가결되었습니다. 당시 야당으로서는 한 표가 절실한 상황이었으니 굳이 무리를 했던 거죠.

저 역시 대다수의 일하는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임신 중에 일터에서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배가 불렀을 때부터는 일을 좀 쉬라는 말 대신 '멋지다, 대단하다'는 덕담(?)을 들었죠. 그러다 보니 끝까지 안 힘든 척하다가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총리 임명을 막는 거보다 네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화를 내는 남편이 고마웠던 거죠. 물론 좀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았겠지만요.

출산한 지 50일 만에 복귀했으니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와서 고생했을 것 같지만, 막상 출근하고 보니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것보다 나와서 일하는 것이 더 편하더군요. 제 경우에는 일하는 틈틈이 유축을 하는 게 고역이었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젖먹이와 씨름하는 남편보다 제 역할이 훨씬 수월했습니다. 아마 처음 50일을 우리 세 식구가 함께 보내지 않았다면, 저 역시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고, 두리 아빠의 고통을 짐작하지 못했겠죠.

한번은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을 겪는 거 같다고, 마음의 감기 같은 거니까 병원에도 가보고 약도 처방받는 건 어떠냐고 말이죠. 하지만 남편은 또 화를 냈습니다. 우울증이 아니라 제가 퇴근 후에 집안일을 잘 돕지 않고, 집안일을 잘 못하니까 짜증이 나는 거라고요. 남편은 제가 저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남편을 우울증 환자로 몰아세운다고 느낀 겁니다. 더 이야기하면 남편 기분만 상할까봐 관뒀지만, 그때 남편을 더 설득해서 상담이나 치료를 받도록 하지 못한 게 여전히 후회됩니다.

문제는 산후우울을 겪는 엄마들이 대부분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6월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2016년 총 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3만2100명 감소한 40만6300명이라고 합니다. 쌍생아까지 고려하면 2016년에 출산한 여성의 수는 40만명에 못 미친다고 추정할 수 있겠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서 2016년 산후우울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를 검색해보니 단 298명에 불과합니다. 40만명 중에 10~20%니까 적어도 4만명의 산후우울증 환자가 있다는 건데, 진료받은 사람은 0.7%네요. 그놈의 '출산율'에만 열을 올리고, 출산을 한 '사람'에게는 무관심한 정부였던 겁니다.

평등육아=공정사회=국민통합

독박육아는 성별에 근거한 차별의 요소가 있으니 헌법 제11조(차별 금지) 위반이고, 독박육아는 경력단절의 원인이 되므로 헌법 제32조(노동권 보장) 위반이고, 독박육아는 실패한 복지정책에 기인하므로 헌법 제34조(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위반입니다. 평등육아는 공정사회이고, 평등육아는 국민통합이며, 평등육아는 적폐청산입니다.

두리가 갓난아기일 때 아빠가 준비한 이유식 재료.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