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리 5,6호기 공론화, 탈핵에 대한 사회적 토론의 기회로 만들자

문재인 정부와 동일한 탈핵 의지를 가진 정권이 수십 년간 계속 정권을 잡으면 몰라도 문 대통령의 탈핵 국가로의 의지는 단순히 5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원전 신규 건설 동결에 그칠 수도 있다. 현 민주당 내부에도 친핵 인사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설사 정권 교체가 되지 않더라도 계속 문재인 정부처럼 강력한 탈핵 노선을 유지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원전 또는 탈핵 정책은 국민들의 여론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일부 소수 세력이 모든 정보와 자원을 독점하고 정부 정책을 결정해 왔다. 탈핵 국가로 가고 안 가고를 떠나서 이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나라 전력 정책, 에너지 정책이 바로 설 수 없고, 탈핵 국가로 갈 수도 없다.

2017-06-30     장재연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국가 선언

발전소 관련 시설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의 정당한 호소를 짓밟고 무한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전력 공급 확대 정책을 펼쳐 온 과거 정부의 흐름을 일거에 바꾼, 역사적 선언이다.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기념식의 문재인 대통령. ⓒ한겨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큰 진전이다

공론화 과정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제대로 진행된다면 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공론화는 이미 건설이 상당히 진행된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이라는 제한된 사안에 대해 3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종결하겠다는 것이다.

원자력계와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부 언론은 이번 정부의 공론화 결정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환경단체는 낙관론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은 탈핵 정책을 지지하는 환경단체나 주민들이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이런 세부적 상황과 무관하게 이번 공론화의 결론이 공사 재개로 결정이 나면 무조건 탈핵 정책에 대한 판결로 확대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부 탈핵 운동 진영에서 이번 공론화 결정에 대한 반대 또는 비난 의견까지 나오는 것도 이해된다. 환경단체가 원전 추진론자들의 의견을 무력화 시키면 정부도 탈핵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가 아닐까 염려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론화는 큰 진전으로 봐야 하고, 또 그런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현장. ⓒ뉴스1

공론화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동일한 탈핵 의지를 가진 정권이 수십 년간 계속 정권을 잡으면 몰라도 문 대통령의 탈핵 국가로의 의지는 단순히 5년이라는 기간 동안의 원전 신규 건설 동결에 그칠 수도 있다. 현 민주당 내부에도 친핵 인사들이 다수 있기 때문에, 설사 정권 교체가 되지 않더라도 계속 문재인 정부처럼 강력한 탈핵 노선을 유지할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정권이나 전문가 집단도 국민을 혹세무민하지 못하도록,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고 그것을 기반으로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관련된 법적,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

영광원자력발전소. ⓒ2003부안21

문재인 정부가 극복해야 할 과제

재생에너지 확대 불가론, 전력 수급 불안과 전기 요금 상승 등 반론의 근거는 어느 정도는 원전 추진론자들의 과장, 왜곡된 주장이기도 하지만, 무시할 수 없고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전력 수요 예측은 전력 수요 목표로 대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성적인 정부 예측과 달리 향후 우리나라 전기 소비량이 감소한다면 신규 발전소 건설의 필요성은 크게 낮아진다. 실제로 이미 세계 선진국들의 전력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일본, 독일, 영국 등만이 아니라 에너지 낭비가 심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조차 전력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다.

세계 여러나라의 전력 소비량 추세.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일본, 독일, 영국, 미국

또한 발전소 신규 건설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삶의 질 악화를 강요받게 되는 해당 지역 주민들,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오염 문제, 온실가스 문제, 핵폐기물과 지진 발생 가능성 등에 따른 입지 안전성 문제는 결코 무시 또는 경시되어서는 안될 요소들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을 예측하고 결정한 주체들은 대부분 에너지 공급 확대 주장론자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으로는 에너지 수급 예측량을 결정하는 과정이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환경지표, 국민 삶의 지표 등을 종합 반영해서, 방치 상태에서의 전력 소비량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전력 소비량 목표를 정하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하며 그럴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개정돼야 한다.

우리나라 전력 소비량 추세

재생에너지 확대의 구체적 실적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있고, 앞에서 전력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국가들까지도 재생에너지 비율을 해마다 급속도로 높이고 있다. 석탄발전소나 원전에 대한 의존을 낮추기 위해서다.

세계 여러나라의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비율 추세.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일본, 독일, 영국, 미국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에 재생에너지 비율 확대를 실증적으로 입증해 보여야 한다. 재생에너지 산업 확대에 정권의 사활을 걸고 적극 노력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제1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연계시켜, 단순히 촉진이 아니라 정량적인 목표율을 걸고 대규모 투자를 통해 달성해야만 한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 비율 세계 최하위 국가. 대한민국 최하위 5위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짓밟아도 되는 발전소 입지 등에 관한 법률을 개편해야 한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의 주민도 전체라는 이름하에 희생을 강요받아서는 안된다. 더구나 이제는 발전소도 필요한 만큼 건설됐다. 다른 선택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의 희생을 무조건 강요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정의롭지 못하다.

지진 발생 지역 등 위험요소가 있는 지역은 원전 입지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해야 한다. 내진 설계의 의미는 만에 하나 과거 수천 년 동안 발생했던 최대 규모의 지진보다 훨씬 더 강한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문제가 없게 안전하게 건설하자는 것이지, 우리 세대에 지진이 발생한 곳에 원전을 건설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 진흥론자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원전에 대한 전문성을 핑계로 위원들 다수가 원전 진흥론자들이기 때문이다. 강창순 초대 위원장은 "진흥 쪽에 몸담았기 때문에 규제를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제대로 알아야 규제도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했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여전히 원전 사업자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 오죽하면 법원에 의해 원자력안전위원회 결정이 불법이라는 판결까지 받게 되었을까 싶다.

법원에서 무효 판결을 받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월성1호기 수명연장 결정. ⓒ환경운동연합

문재인 정부의 시대적 소명

전력 수요량이 지속 가능한 요소들을 반영해서 목표량으로 정해지고, 재생에너지가 획기적으로 확대되며, 신규 원전의 입지가 제대로 주민들의 정당한 동의 절차를 거쳐야만 하고, 원전의 승인이 제대로 된 안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면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 운동 환경단체 흉내를 내는 것에 머물면 곤란하다. 탈핵 국가로 가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 가능성을 입증하는 최초의 정부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으로 탈핵 국가를 앞당기는 길이다.

공론화에의 적극 참여

모처럼 공론의 장이 만들어졌으니 적극 참여해서, 원전과 탈핵 정책 전반에 관한 사회적 토론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뒤에서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장재연의 환경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