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아이들한테서 모유를 빼앗았나

모유 수유와 단유의 고통, 등골이 휘는 분유값, 게다가 젖먹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낯선 사람들까지 '모유 안 먹이냐?'는 질문을 마구 던지죠. 모유 수유는 말 그대로 개고생입니다. (다들 엄마한테 잘합시다.) 목은 꺾어질 듯 아프고, 손목은 부러질 듯 아프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픈데다 결정적으로 잠을 못 자니까요. 출산의 고통은 시한부지만, 아이가 태어나 첫 두달 동안 하루에 열번씩 젖을 물릴 때의 심정은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더군요.

2017-06-29     장하나

[장하나의 엄마 정치] ⑦ 모유 수유의 정치학

"출산의 고통은 시한부지만, 아이가 태어나 첫 두달 동안 하루에 열번씩 젖을 물릴 때의 심정은 '여기가 무간지옥이구나' 싶더군요." 집에서 두리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장하나 전 국회의원.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모유 수유 방해' 공모?

'한국 여자들은 가슴이 처질까봐 모유 수유를 안 한다더라.' 저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모유 수유를 할지 말지는 온전히 엄마가 선택할 문제이지만, 정부와 의료계와 산업계가 모유 수유를 방해하고 있다면? 누군가 우리 아기들에게서 엄마 찌찌를 빼앗고 있다면? 그건 전혀 다른 문제겠죠.

아이를 낳기 전까지 모유 수유에 대해 아는 거라곤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장면이 전부였습니다. 아기 돼지들이 젖을 알아서 먹고, 누워서 젖을 물리는 엄마 돼지는 한없이 평온해 보이는 장면 말이죠.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의 신체는 수유하기에 적합하지가 않았습니다. 수유 경험이 없는 분이라면 지금 당장 본인의 가슴에 시선을 고정하고 10분만 그 자세를 유지해보세요. 아마 1분도 안 돼 목덜미가 뻐근해 올 겁니다. 자세도 자세지만 잠을 못 자는 건 정말 괴롭습니다. 모유 수유든 조제분유를 먹이든 아이가 백일이 되기까지는 2~3시간마다 밥을 먹어야 하니까 엄마들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고, 초주검이 되죠. 백일까지는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펴낸 '2016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여성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41.1%(비정규직 1.9%, 민간기업 34.5%, 공무원 75.0%)에 불과하고, 남성 육아휴직자는 전체 육아휴직자의 10%가 안 되니 '독박육아'의 책임은 법 집행 의지가 없는 고용노동부에 있었네요.

독박육아의 법제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엄마들이 생후 1시간 이내에 초유를 수유하는 비율은 단 18.1%밖에 되지 않고, 생후 1주 동안 완모 하는 비율은 23.9%, 모유+조제분유 65.9%, 조제분유만 먹이는 경우는 10.2%로 나타납니다. 반면 퇴원 이후인 생후 2주부터 완모 하는 산모의 비율은 50.1%로 급증하는데요. 그러니까 엄마들은 완모를 원하는데 오히려 산부인과에서 출산 직후 조제분유 섭취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드는 수치입니다. 아기들이 인공 젖꼭지를 접할수록 완모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병원에서 생후 1주 이내에 젖병을 물리는 일은 향후 모유 수유에 큰 방해물로 작용합니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공공 산후관리사(MCA)는 3년 과정의 직업 훈련을 통해서 양성됩니다. 반면 한국의 산후관리사는 아직 국가자격증이 없고, 민간자격증은 온라인 강의만으로도 취득할 수 있으니 높은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들죠. 모유 수유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디에 가야 할까요? 저도 처음에는 당연히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그러나 산부인과에서는 일반적으로 연고와 항생제 처방을 해줄 뿐 젖몸살을 풀어주거나 막힌 유관을 뚫어주지는 않더군요.

우리나라도 보건소를 거점으로 산전·산후 관리를 책임지는 조산사나 방문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유방 관리도 당연히 공적 영역에서 책임져야 합니다. 국가자격증으로 복지부가 관리해야만 국가에서 지원하는 근거가 마련되겠죠. 엄마가 너무 힘들어서 수유를 안 할 수도 있고, 젖이 안 나와서 수유를 못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엄마가 수유하는 방법을 몰라서 못 하거나, 돈이 많이 들어서 못 하는 일은 없는 게 맞지 않나요?

"저는 24개월 수유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1년간의 수유도 사실 너무 힘들었습니다.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수유 중인 장하나 전 의원. 두리 아빠 사진가 점좀빼

총체적으로 분유 권하는 사회

업무 특성상 일정한 시간에 유축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일 젖이 땡땡 불어서 아프고, 줄줄 새기 일쑤였죠. 그러나 아프고 옷이 젖는 건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제때에 유축을 못 하니 결국 또 유관이 막히고 유구염이 재발하는 겁니다. 젖 구멍이 막히는 고통은 바늘로 쑤시는 것 같고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인데, 겪어본 엄마들이라면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겁니다.

1981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모유 수유 대체식품 판매에 관한 국제규약'을 채택했고, 1990년 32개국의 정책결정자와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등 국제기구는 '모유 수유의 보호, 권장 및 지지에 관한 이노첸티 선언'을 채택했습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모든 여성이 모유 수유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의무를 지게 되었고, 모든 영아들에게 생후 6개월까지 모유만 먹일 것, 그리고 만 2살이 될 때까지 모유 수유를 지속할 것을 권장하고 있죠. 국제사회가 모유 수유를 정부의 역할로 인식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데 한국의 발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

아울러 세계보건기구와 유니세프는 여성 노동자가 복직 뒤에도 모유 수유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엄마에게 친근한 일터'도 지정하고 있는데요. 국내에는 단 29개 사업장(15개 민간기업과 14개 공공기관)이 전부입니다. 상황이 이 정도면, 한국 엄마들이 몸매 망가질까봐 모유 수유를 안 한다는 말은 완전한 허구라고 봐도 되겠죠?

몸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2015년 국정감사 때 정부세종청사에 출장을 갔습니다. 고용노동부 직원분에게 유축 할 장소를 물어보니 여직원 휴게실을 안내해주더군요. 사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나가면 보관상의 문제로 유축 한 젖을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유축을 안 하면 가슴이 아프고 젖이 새니까 유축기를 항상 지니고 다녀야 하죠. 유축을 마치고 휴게실에 있는 냉장고를 무심코 열어봤는데 냉동실에 모유 저장팩이 여남은 개 늘어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반가운 마음이 들다가 '아, 이 사람(노동부 공무원)들도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뒤따랐습니다. '공무원 엄마들의 모유 수유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유 수유를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의 공무원들이 모유 수유가 사실상 불가능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 개선에 좀더 힘써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죠. 공무원 육아휴직 사용률 75%, 비정규직 1.9%라는 수치만 봐도 저는 늘 치가 떨립니다.

KTX 화장실에서 젖을 짜며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