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착해야 투자 받는다

미국 항공사들의 소비자 평판은 최악이다. 항공사 서비스 평가 기관 '스카이트랙스'가 승객 설문조사 등을 통해 발표한 2016년 세계 항공 서비스 순위에서 미국 항공사는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 항공사들은 지금 망해가는 걸까? 놀랍게도 그 반대다. 미국 항공사 경영은 점점 더 튼튼해졌다. 미국 항공사들의 승객 1명당 순이익은 2016년 22.4달러였다. 유럽이나 아시아 항공사들보다 월등하게 높다. 최근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2017-06-27     이원재

큰맘 먹고 외국 여행 떠나는 부모님이 털어놓으시는 걱정이다. 그렇지 않아도 만만찮은 연세에 열두 시간 넘는 비행시간을 버티는 일이 걱정인데 설상가상 항공사 서비스가 나쁠까봐 노심초사다. 하지만 어쩌랴, 빠듯한 호주머니 탓에 조금이라도 싼 항공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국 항공사를 선택하셨단다.

승객 모두 자리에 앉은 상태에서, 항공사 쪽은 숙박과 약간의 보상금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승객 4명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요청했다. 4명 중 1명인 데이비드 다오는 그 요청에 응할 수 없다며 항의했다. 69살의 베트남계 미국인 다오는 다음 비행기를 타면 환자 진료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페이스북 갈무리

'공차회송'을 위해서였다. 공차회송이란 승무원을 다른 공항으로 보내기 위해 승객 자리에 앉혀 이동시키는 것이다. 항공 노선 효율화를 위해 항공기 및 승무원 수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운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비용 절감을 위해 공차회송을 지나치게 실행하다 사고가 터진 것이다.

10~20년 전만 해도 해도 '미국의 서비스'는 '고급 서비스'의 다른 표현이었다. 컨설팅, 금융, 의료를 '비싸고 질 좋은' 서비스로 여겼다. 항공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항공사들의 소비자 평판은 최악이다. 항공사 서비스 평가 기관 '스카이트랙스'가 승객 설문조사 등을 통해 발표한 2016년 세계 항공 서비스 순위에서 미국 항공사는 2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놀랍게도 그 반대다. 미국 항공사 경영은 점점 더 튼튼해졌다. 미국 항공사들의 승객 1명당 순이익은 2016년 22.4달러였다. 유럽이나 아시아 항공사들보다 월등하게 높다. 최근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사회적 이익은 '법을 지키는 수준'으로만 이행하면 충분한데, 왜 재무적 이익은 클수록 좋은가? 재무적 이익이란 '투자자'라는 이해관계자 그룹의 이익일 뿐인데 말이다. 왜 소비자·노동자·환경 등 다른 이해관계자 이익이 재무적 이익과 균형을 이루면 안 될까?

건설업체가 주거문제에 관심 갖게 하려면?

현재 자본주의 기업에서 통용되는 관념은 '적절한 수준의 소비자 보호'와 '법을 어기지 않는 수준에서 환경 영향'만 달성하고 재무적 이익을 최대한 키우는 게 좋은 기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적절한 수준의 재무적 이익'만 달성하고 제품이나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편익을 최대한 키우는 기업이 더 좋은 기업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기업의 '재무적 성과'보다 '사회적 성과' 전체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만들긴 쉽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금융이다. 투자자는 재무적 성과만 요구한다. 그게 투자자의 이해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은 투자자 없이 시작할 수 없다.

사회문제를 해결할 때 무게중심이 있는 사업일수록 문제는 더 커진다. 예를 들어 주택건설 사업을 생각해보자. 대부분 주택건설 사업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과 승인 아래 이뤄진다. 시민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사회적 목적을 띠기 마련이다.

그런데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 성과도 감안해 투자하는 금융이 있다면 어떨까? 주민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둔 주택건설 사업 투자자가 있다면? 장애인에게 더 나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할수록 사업성을 더 높게 평가하는 투자자가 있다면? 생산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가도록 공정무역 거래질서를 지키는 유통업체에 더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투자자가 있다면?

전세계 '윤리적 투자' 확대 추세

5월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임팩트금융추진위원회가 출범식을 가졌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오른쪽 넷째)가 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뉴스1

최근 이를 국제적으로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 미국·독일·일본·러시아 등 주요 8개국(G8) 정상모임에서는 '임팩트투자 태스크포스'를 2013년 만들어 운영했다. 태스크포스는 '세계임팩트투자그룹'이라는 모임으로 확장돼 가입 국가를 13개국으로 늘리며 활동 범위를 키웠다. 여기서 활동하는 일본·오스트레일리아가 최근 임팩트투자기금을 적극적으로 만들었다.

임팩트금융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주거든 환경이든 노동이든 재원이 필요하면 국가가 지원금을 통해 사업하도록 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새로운 실험이다. 국가가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하던 기존 방식은 한계에 부닥쳤다. 국가 행정구조상 유연한 실험은 불가능하다. 보조금 지급 방식도 마찬가지다. 까다로운 감사를 거치고 경직된 항목에 맞춰 집행해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감수하고 실험하며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는 금융투자 형태의 재원은 필요하나 찾기 어렵다. 적정한 위험을 지면서 공익을 추구하되 성과에 따라 보상을 거두는 인내자본 성격의 임팩트금융이 필요한 이유다.

과제는 많다. 우선 법제 변화가 필요하다. 재무 성과의 극대화가 아니라 사회문제 해결이 목적인 임팩트금융은 현재 행정체계상 미아에 가깝다. 정부의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민간에 공공사업을 위탁할 때 사회적 성과를 분명하게 요구하고 평가하면서도 수행 과정은 더 자유롭고 실험적으로 짤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줘야 한다. 그래야 금융의 역할이 생긴다. 금융권에서도 임팩트금융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아 좀더 손쉽게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익만 많이 내면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라고 말하려면, 새로운 가치를 평가해줘야 한다. 임팩트금융은 GDP가 평가하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평가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