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2만원'에 분노하는 동안, 뒤에서 웃는 '진짜 갑'은 따로 있다

2017-06-24     허완
Korean Delivery Chicken Box ⓒDONGSEON_KIM via Getty Images

[토요판] 뉴스분석 왜?

▶ “피자집엔 안 그러면서…치킨집엔 바라는 게 뭐 그리 많을까요.” 한 닭집 사장님의 하소연이다. 치킨은 맛있고 친숙하고 만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치킨에 치킨집에 치킨값에 바라는 게 많다. 알고 보면 결코 만만하지 않은 치킨과 치킨값에 대해 알아보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셋 중 이 치느님이 가장 ‘만만’하다. A4 용지 한장 크기(0.062㎡)보다 작은 공간에서 한달 남짓 살다가 도축되는 게 치킨이 되는 닭들의 일생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라도 발생하면 산 채로 묻히기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5.4㎏.(OECD. 2014년 기준) 닭 한마리의 ‘고기 양’은 900g 안팎이니 대략 1인당 1년에 16마리를 먹는다고 치고, 인구수를 곱하고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200만마리 이상의 닭이 도축되는 셈이다. 업계는 이 중 절반 정도가 치킨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꼼수와 ‘오바’가 부른 원가 논란

언론들은 ‘치킨대란이 온다’고 했고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에 편승해 가격을 올리려고 한다”고 분석했다.(‘‘치킨 대란’ 본격화하나…BBQ 20일부터 가격 올린다’ <연합뉴스>) 가맹점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는 동안 본사만 배를 불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비비큐의 지난해 매출은 2198억원이었고 영업이익은 19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37.7%가 올랐으니 그럴 만했다.

이때 농림부가 밝힌 ‘생계 1㎏ 1600원’은 사육 농가가, 프랜차이즈에 생닭을 공급하는 육계업체에 넘기는 가격이었지만 이런 설명 없이 “치킨 가격에서 닭고기가 차지하는 원가 비중은 10% 내외”라는 말이 언론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럼 나머지 90% 마진을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이 나눠먹는단 말이냐!”는 ‘신도’들의 분개가 뒤따랐다. 세무조사라는 몽둥이를 든 정부의 협박은 즉효가 있었다. 비비큐는 인상안을 철회했다.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던 비비큐의 가격 인상 시도는 6월 중순 공정거래위원회가 현장 조사에 나서면서 없던 일이 됐다. 비비큐가 5월초 1차로 가격을 올리면서 전국 가맹점에 마리당 500원씩 광고비를 걷겠다고 공문을 보낸 사실이 드러났고 이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공정위의 조사와는 별개로, “오르는 가격 전부는 100% 가맹점주 몫”(비비큐 공식 블로그. 4월27일)이라던 비비큐를 향해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도 뒤따랐다. 비비큐는 “광고비 분담이 가맹점주들로 구성된 마케팅위원회의 자발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했지만 비난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공정위 조사를 받은 직후인 6월16일 오후 비비큐는 이미 올린 30개 제품의 가격을 내리기로 했다. 같은 날 매출액 기준 업계 1위인 교촌치킨은 가격 인상 계획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치킨의 원가는 얼마일까?

사실 5000원 치킨은 유통 시스템을 틀어쥔 롯데마트기에 가능했고 일종의 판촉행사 성격이 컸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들과(비비큐는 당시 비난의 선봉에 섰다) 가맹점주, 육계협회까지 한목소리로 롯데마트의 ‘소상공인 죽이기’를 비난했고 통큰치킨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하림이나 마니커 같은 닭가공업체에서 공급받는 닭 한마리 값은 2500~3000원 정도. 본사는 이 닭을 조각내고 염지(소금과 향신료, 첨가물 등을 섞은 액에 담가 부드럽고 짭짤하게 하는 과정)한 뒤 진공포장해서 가맹점에 넘긴다. 가맹점은 염지닭을 마리당 4500~6000원을 주고 공급받는다. 서울 마포구에서 프랜차이즈 치킨매장을 운영하는 ㄱ씨는 “윙이나 닭다리로 구성된 메뉴의 경우 이 염지닭 가격이 7000원대에 이른다”고 말했다.

가맹점주들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 이제부터다. 알바 노동자들의 임금과 상가임대료, 가스비, 전기세 등 점포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이 재료값 못지않게 올랐고 더 오를 예정이라는 게 그들의 걱정이다. 점포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 비용이 한마리 기준으로 4500~5000원까지 나온다고 한다.

또다른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ㄴ씨는 “한마리 팔아 2500원만 남겨도 많이 남기는 건데 쉽지 않다. 부부가 낮 12시부터 새벽 1시까지 쉴 새 없이 일해서 버는 수입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기로 공약했고, 당장 내년에도 꽤 오를 듯한데 현재 치킨 판매 가격으로 감당이 안 된다”며 비비큐의 가격 인상이 좌절돼 아쉽다고 했다.

원가 논란 뒤에 숨은 ‘진짜 갑’

하지만 치킨업계가 지금처럼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데엔 정작 육계기업들의 책임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육계기업이란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등 농가로부터 생닭을 사들여 가공한 뒤 프랜차이즈 본사에 넘기는 닭가공업체를 말한다.

고기용 닭을 생산·가공하는 국내 육계시장은 수직계열화가 94% 이상 진행된 상태다. 수직계열화란 기업이 병아리와 사료·항생제를 농가에 공급하고 매입과 도계(도축), 가공까지 하면서 최종적으로 프랜차이즈 업체에 공급하거나 직접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닭을 키우고 잡아서 파는 전 과정을 기업이 주도한다는 뜻이다. 정부는 ‘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농가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1980~90년대 기업의 수직계열화를 적극 지원했다.

닭값이 폭락해도 육계기업은 사료공장부터 도계장까지 소유하고 있어 타격을 입지 않는다. “도계량을 늘리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고 생산비 이하로 닭값이 떨어지는 상황”(<한국농어민신문> 2016년 8월9일)에서도 시장점유율 선점을 위해 시설 증설 경쟁을 벌이는 건 이 때문이다.

) 닭다리나 윙으로만 구성된 치킨 메뉴들이 늘어나는 이유가 순전히 소비자가 원해서일까?

의 저자 정은정씨는 “치킨 가격이 몇년째 오르지 않은 상황이라 인상 필요성은 있지만 가격 인상분이 가맹점주와 농가에 골고루 돌아가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치킨 가격을 올려도 농가엔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씨는 “치킨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치킨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체재’가 늘어나 가격 인상이 가맹점주의 수익 개선에 직결된다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대한민국 치킨전>(2014·정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