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못한 대접"이라는 말

8센티 모래를 걷어내면 화강암으로 구성된 경주로 바닥을 5톤의 충격이 오는 시속 60킬로 속도로 뛰니 어깨와 다리가 성한 놈이 없다. 통증 없는 말이 없고, 천지굴건염, 계인대염, 근육통으로 매일 치료받는다. 경주는 더욱 가혹하다. 죽을 힘을 다해 뛰지만, 기수들의 채찍은 멀리서도 들릴 만큼 처절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경주에서 매주 한두 마리가 부상으로 숨을 거둔다. 더 이상 경주가 불가능한 장애나 부상을 입어야 고통스로운 경마장을 떠날 수 있다. 산재율 100 퍼센트다. 경마장을 떠나면 더욱 불행한 삶이 기다린다.

2017-06-21     최현우
ⓒCarmen Martínez Torrón via Getty Images

['말보다 못한' 대접받다 끝내...1호 말마사지사의 죽음]

보도했고, 국정농단 보도로 가장 신뢰를 받는 방송에서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부산‧경남경마장에서 근무하던 말 관리사가 말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근무하다 마사회의 불합리한 제도와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말보다 못한 대접"이라는 제목을 뽑으려면 독자나 시청자들은 말이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실제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알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국민 일반은 이런 전제가 되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말에 대한 단순한 질문에도 나는 당황한다. 일반인은 말과 경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두 마디 이내의 짧은 대답을 기대하는데 반해, 내가 설명해야 할 내용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말 관리사는 조교사의 지시에 따라 마구간을 관리하고 말을 훈련하며 배식과 마사지, 행정업무를 수행한다. 사진출처: 한겨레신문

자살한 말관리사는 '○ 같은 마사회'라고 유서에 적었다. 왜 '○ 같은 마사회'일까? 해방 이후 마사회는 말을 소유하고 조교사와 관리사를 직원으로 고용해서 경마를 시행했다. 그러다 1992년 개인마주제를 시행하면서 마주가 경주마를 사서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면 조교사는 말 관리사를 고용해서 관리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조교사를 마사회 직원에서 개인사업자로 신분을 바꾸고 말 관리사는 조교사가 고용하는 형태로 변경했다. 하지만 마주와 조교사 말관리사의 면허와 징계, 조교사와 말관리사의 급여와 처우는 특별법인 마사회법에 따라 마사회가 정한다. 마사회는 경마에 관한 한 입법과 행정, 사법권을 가진 독재기관이다. 경마 시행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책임을 마주, 조교사, 말관리사에게 묻고 자신들은 무한한 권한만 누린다. 그래도 92년까지 마사회 직원이었던 서울경마장의 말 관리사는 조교사협회가 고용하는 체계를 택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기 때문에 고정급여의 비중이 높아 상대적으로 급여의 안정성과 고용의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뒤늦게 개장한 부산‧경남경마장에서는 조교사가 말관리사를 개별적으로 고용하고, 급여 또한 조교사의 수입에서 지급하는 체계로 운영한다. 조교사의 해고통보 한마디로 직장에서 잘리고, 급여는 관리하는 경주마의 성적에 따라 변동이 크다.

경마장의 마구간은 80년대 지어진 시멘트 건물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제 말이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전에, 말은 어떤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부터 알아보자. 신라의 개국신화에서 보듯이 인류는 말을 신격(神格) 또는 최소한 인간과 같은 존재로 대우해왔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제우스 다음 서열인 포세이돈은 말의 신이다. 알렉산더대왕의 첫 번째 신하가 애마 부케필로스였고, 나폴레옹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애마 마랭고였다. 말에게는 여권이 부여되고, 글로벌통신사의 "올해의 체육인 선정"에는 말이 빠짐없이 포함된다. 다른 동물과 달리 말은 "가르친다"고 표현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조교사(調敎師)라 한다. 말에게는 지시하지 않고 말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돕는다고 하고 이를 부조(扶助, aids)라 한다. 백번을 양보해도 말은 고기를 취하기 위한 동물이 아니므로 최소한 반려동물로는 대접받아야 한다.

경마장으로 오면 극한의 삶이 기다린다. 2.4m 몸으로 한 바퀴 돌기도 힘든 좁은 마구간에 24시간 갇혀 지낸다. 말은 본능적으로 동료 말과의 사회적 교류가 필요한 동물이다. 또 건강을 위해서는 매일 최소한의 운동이 필요한 동물이다. 종일 풀을 뜯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선풍기도 없이 여름 더위, 난방 장치 없이 겨울 추위를 종일 독방에 갇혀 버텨낸다. 경마장의 마구간은 80년대 지어진 시멘트 건물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하루 세 번 주는 사료 먹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말을 모르는 사람도 경마장의 마구간을 보는 순간 "말이 불쌍하다." 는 단어를 연발한다. 새벽 한 시간 경주로에서는 훈련이 있다. 1,600마리 말이 한꺼번에 훈련하니 앞선 말이 뛰면서 던지는 모래에 맞아 실명하기도 한다. 8센티 모래를 걷어내면 화강암으로 구성된 경주로 바닥을 5톤의 충격이 오는 시속 60킬로 속도로 뛰니 어깨와 다리가 성한 놈이 없다. 통증 없는 말이 없고, 천지굴건염, 계인대염, 근육통으로 매일 치료받는다. 경주는 더욱 가혹하다. 죽을 힘을 다해 뛰지만, 기수들의 채찍은 멀리서도 들릴 만큼 처절하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리는 경주에서 매주 한두 마리가 부상으로 숨을 거둔다. 더 이상 경주가 불가능한 장애나 부상을 입어야 고통스로운 경마장을 떠날 수 있다. 급여도 없다. 산재율 100 퍼센트다. 경마장을 떠나면 더욱 불행한 삶이 기다린다. 성적 좋은 일부 암말은 씨암말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대부분은 안락사 후 소각장으로, 개나 고양이 먹이를 만드는 도살장으로, 승마장으로 또는 시골 농가의 헛간에서 불법적으로 죽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