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역사의 고리1호기가 '영구 폐쇄'되는 순간(화보)

2017-06-19     곽상아 기자

16일 부산 기장군의 조용한 동해 바닷가에 터를 잡은 고리원자력본부 정문 옆 오른편에는 눈길을 끄는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고리의 추억’이라고 새겨진 뒷면 글씨가 선명하다. “고리는 마을 이름에 불을 안았던 인연으로 오늘 여기 민족웅비의 힘의 원천 원자력발전소가 섰네”. 국내 첫 원전인 고리제1발전소 착공(1972년)을 앞두고 1969년에 이 마을에 살던 148가구 주민 1250명이 이주할 당시를 회상하며 주민 이해웅씨가 쓴 문구다. 고리는 봉수대가 있던 마을이라서 옛 지명이 화포(火浦)였다고 한다. 이 작은 포구가 40년이 지난 지금, 원전을 둘러싼 추억과 갈등이 교차하는 격동의 현장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16일, 고리원자력본부 정문 옆에 세워져 있는 ‘고리추억비’.

고리1호기 안의 여러 구조물에는 ‘민족중흥의 횃불’ 탑이며 ‘대한민국 원전의 자존심’, ‘미래를 밝힌 선구적 불빛’ 등 산업화를 이끌어온 원전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문구가 곳곳에 쓰여 있었다. ‘고리제1발전소 주제어실’은 격납고 옆에 붙어있는, 거대한 배관들이 이리저리 뒤엉킨 터빈건물 안쪽에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원자로 및 방사선감시 밸브와 관련된 원자로·발전기 상태를 실시간으로 계측하는 표시등 1500여개가 제어실 사방의 벽을 빙 둘러싸며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상업운전을 시작한 지 40년 만에 임무를 끝내고 물러나는, 국내 원전 최초의 ‘퇴역’이다. 고리1호기는 지난해 부산시의 전체 가정용 전기소비량의 106%를 생산·공급했다.

지난 17일 오후 6시, 고리제1발전소의 주제어실에서 근무자가 터빈발전 정지버튼을 수동으로 눌러 원자로 가동을 영구 중지시키고 있다.

원전 연구자를 포함한 원전산업 종사자들(약 10만명 추산)은 “앞으로 전력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고,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더 많은 원전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우며 ‘탈원전 정책 재검토’를 연일 요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신규 원전 전면중단과 건설계획 백지화 △수명이 다한 원전 즉각 폐쇄 △2030년까지 국내 총발전량 중 원전 비중 18%로 축소(현재 30%) 등 탈원전 로드맵을 내놓은 가운데, 고리1호기 원자로의 불은 꺼졌지만 탈원전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갈등의 불꽃은 다시 점화하는 형국이다.

탈원전에 대한 반발은 원전산업계뿐 아니라 지역에서도 거세게 일고 있다. 신고리 현장 들머리에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지역주민 생계를 보장하는 유일한 대책”이라고 쓰인, ‘원전지역 서생면 사업자협의회’가 내건 현수막이 무더운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신고리 1·2호기 옆에는 신고리7·8호기 예정부지도 이미 마련돼 있다.

연간 전력수요 증가율이 1~2%에 불과한 상황에서 원전산업계가 새 원전을 계속 건설하려면 기존 원전을 차례로 정지시켜야 하는 현실적인 사정도 있다.

박 소장은 “여기서 나오는 전력은 국내 최대고압인 765㎸라서 송전탑이 기존 시설보다 훨씬 더 높이 세워져야 한다”며 “밀양송전탑이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은 것도 4호기 운전이 늦어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탈원전의 서막이 오른 고리는 동시에 갈등의 현장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