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킹(parking)보다 파크(park)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은 카셰어링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도시 전체의 주요 교통수단을 카셰어링과 지하철 등 대량수송 대중교통으로 삼는 경우를 상정해 시뮬레이션해봤다. 포르투갈 리스본을 모델로 삼았다. 인구, 이동량, 이동경로 등 실제 데이터를 가지고 진행했다. 연구 결과, 교통체증은 사라졌다. 시내 주차장은 5%만 남기고 없애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동차 대수는 현재의 3%만 있어도 된다. 탄소배출량은 3분의 1로 줄었다. 대신 차량 1대가 달리는 거리는 현재보다 10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전체 자동차가 달리는 거리를 모두 합하면 복잡한 출퇴근 시간 때도 교통량이 현재의 37%로 훨씬 줄어든다.

2017-06-16     이원재
ⓒvladimir zakharov via Getty Images

주차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주차장을 더욱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쉽다. 흥분해 행동에 옮기기 전에, 한번 따져보자. 2016년 아이는 40만 명 태어났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져 곧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는 이야기가 무성하다. 그런데 같은 해 등록 자동차 수는 81만 대 늘었다. 한 차례도 쉬지 않고 계속 늘기만 한다. 주차장은? 2015년 한 해 동안 차량 110만 대 면이 새로 생겼다.

애플파크에서 가장 넓은 공간

그 주차장을 만드는 것은 시장이 아니다. 법과 정책이다. 세계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애플 본사에서조차 그렇다.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우주인들은 검은 우주만 보며 지내지 않는다. 애플 직원들은 대형 유리창을 통해 보기 좋게 조성된 7천 그루 나무로 이뤄진 숲을 감상하며 쾌적하게 일할 수 있다. 애플파크는 직원들을 위해 무려 31만8천m²에 이르는 쾌적한 사무실과 실험실 공간을 제공한다.

이렇게 넓은 주차 공간이 생긴 것은 애플이 원해서가 아니다. 애플파크가 위치한 쿠퍼티노시의 규제 때문이다. 쿠퍼티노는 모든 건물에 주차 공간 설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쿠퍼티노시 규정에 따르면, 부동산 개발업자는 한 구역을 개발할 때마다 집 한 칸당 주차 공간 2개를 둬야 한다. 그중 하나는 지붕이 있어야 한다. 패스트푸드 음식점에는 세 자리당 1대의 주차 공간이 있어야 한다. 볼링장에는 레인당 7개, 일하는 사람 한 명당 1개의 주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주차장 의무 설치 규정은 자동차가 지금처럼 대중화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자동차 제조 기업들로서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그 출발은 자동차의 원조, 미국이었다.

'주차 전쟁' 해법은 주차장 줄이기

미국에서 자동차 대중화와 함께 시작된 '최저주차장' 개념은 전세계로 확산된다. 싱가포르의 납골당에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와이너리에도 주차장 의무 설치 규정이 적용된다. 자동차 대수가 급격하게 늘면서 중국 베이징조차 2003년 이 개념을 도입한다. 도시 중심부는 아파트 한 채당 0.3대, 외곽에는 0.5대로 정해졌다.

그런데 공짜 주차장을 최대한 늘리면 주민들 삶의 질이 값싸게 높아지는 것일까? 아니다. 공짜 주차장이라 해도 결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 그 비용을 낸다.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차를 주차하는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셈이다. 그것도 하루에 1시간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사는 데 말이다. 게다가 사람이 걷는 도로를 줄여 주차 공간에 내주는 것이다.

이에 비해 자동차 자체의 이동 효율성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다. 선진국에선 자동차 1대당 평균 탑승객 수가 1명을 조금 넘는다. 대부분 '나 홀로' 운전 차량이다.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미세먼지와 탄소 배출 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운전으로 먹고사는 사람만 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교통포럼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을 모델로 카셰어링(차량공유)과 지하철 등을 시뮬레이션해보니 필요한 주차장은 5%에 불과했다. 한겨레

한국에도 일본 같은 차고지증명제가 있다. 제주도는 2017년부터 옛 제주시권의 경우 중형자동차 이상의 새 차는 차고지를 확보한 때만 등록을 받는다. 2018년부터는 모든 새 차 구입으로 확대한다. 제주에는 2016년 11월 말 기준 35만 대 차량이 운행 중이다. 가구당 1.3대꼴로,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가구 대비 가장 많다.

주차장만 없애면 도시가 쾌적해지는가? 자동차가 줄지 않으면 엄청난 혼란이 오지 않을까? 그래서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 이 문제를 이른 시간 안에 해결하는 한 가지 해법은 '차량공유'(카셰어링)이다.

연구 결과, 교통체증은 사라졌다. 시내 주차장은 5%만 남기고 없애도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동차 대수는 현재의 3%만 있어도 된다. 탄소배출량은 3분의 1로 줄었다. 대신 차량 1대가 달리는 거리는 현재보다 10배가량 늘었다. 하지만 전체 자동차가 달리는 거리를 모두 합하면 복잡한 출퇴근 시간 때도 교통량이 현재의 37%로 훨씬 줄어든다.

놀이터와 도서관이 들어선다면

주차장이 지금의 20분의 1로 줄어들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산책로와 자전거도로와 공원과 놀이터와 도서관과 체육공간이 들어선다면, 주차비가 비싼 대신 걸어다니고 자전거 타는 데 지원받을 수 있다면, 변화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변화에 다들 저항한다고? 아직 우리나라 1인당 자동차 보유 대수는 미국, 일본, 유럽에 한참 못 미친다. 설득 가능성을 따지자면 그들보다는 우리 쪽이 높다.

* 이 글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