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주인들은 역사에서 손 떼라

정작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결성된 '동북아 역사 왜곡 대책 특별위원회'가 그것이다. 위원회가 '위대한 상고사'를 꿈꾸는 일본 군국주의나 나치의 파시즘적 역사관에 가까운 사이비 역사 해석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비난하자는 게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해석이다. 문제는 고구려와 한사군의 영역을 둘러싼 역사가들의 동북아 역사 지도 논쟁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판결'을 내리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이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로 내정된 도종환 의원이 이 위원회에서 하버드대의 고대 한국 프로젝트나 동북아 역사 지도 폐지에 맹활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017-06-12     임지현

그것은 사실의 옳고 그름이나 해석의 적정성 문제가 아니다. 국정교과서 밑에 깔려 있는 발상, 즉 권력이 역사 해석을 '독점'한다는 그 발상이 문제인 것이다.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전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어떤 정권도 특정한 코드의 과거를 만들어내려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 과제에 포함하라고 지시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문득 떠오른 상념이다.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영호남에 걸쳐 있었던 가야사 연구를 통해 지역감정을 넘어 영호남 통합의 물꼬를 트겠다는 문제의식에서 가야사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한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 과제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 뉴스1

내 제안은 이렇다. 문 대통령이, 현실 정치는 역사 해석에서 손을 떼어야 하며 앞으로 모든 청와대 주인들도 이를 관행으로 삼자고 제안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그리된다면, 가야사 논란은 본인 말대로 '뜬금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또 에피소드로 넘어갈 수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후보로 내정된 도종환 의원이 이 위원회에서 하버드대의 고대 한국 프로젝트나 동북아 역사 지도 폐지에 맹활약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 사회의 기억 문화가 영화, 소설, 드라마, 박물관, 미술관, 만화, 인터넷 게임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화부는 교육부 못지않게 중요한 역사 담론의 생산자이다. 국회 특위에서의 판관 경험과 결합한 그의 국수주의적 역사관이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보수적 정치관에도 시리아 난민 문제 등에 대해 가장 진취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뒤에는 2017년 토인비상을 받은 글로벌 역사가 위르겐 오스터함멜의 조언이 있었다. 유럽 자체가 대규모 이민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독일 정치와 한국 정치의 차이는 역사가 오스터함멜과 사이비 역사학자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도종환 의원이 5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스1

* 이 글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