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사장 퇴진' 내부 성명을 대거 삭제했다

2017-06-11     김현유
ⓒ한겨레

(MBC)이 사내 게시판 글을 지난 7일 대거 삭제했다. 삭제된 글은 모두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이었다.

사내 전자게시판 글을 심의하고, 이 같은 결론을 내린 곳은 문화방송 내 ‘전자게시판 운영위원회’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지난 9일 발표한 ‘사내 언로를 틀어막고도 공영방송을 자임하는가’ 성명에서, 해당 위원회 구성이 사쪽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일반 사원들을 대표하는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는 사쪽이 삭제한 성명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 공개한다. 아래 성명들의 전문은 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블로그(▶바로가기)에서 볼 수 있다.

1. “30대 초반에 마이크를 빼앗긴 후배는 이제 30대 후반이 됐다”

2009년인가 입사한 이 후배는 여느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부에서 일을 시작했다. 회사는 점점 집처럼 편해졌고 일은 손에 붙어 갔다. 깨지고 욕먹고 하나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원치 않는 숱한 술자리에 끼어 앉은 3년어치만큼 기사는 볼 만해졌다. 친한 취재원도 늘어나 가끔 자잘한 단독이나마 챙겨올 수 있었고 그런 날 퇴근하는 뒤통수에 선배의 “수고했어!” 한 마디가 날아들면 복도에 서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며 혼자 슬며시 웃었다.

하지만 긴 보도국 밖의 생활은 사실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일정도 목표도 없는, 회사와 계약했던 기자라는 직업과는 한참 먼 일상이 이어졌다. 성실한 성격이라 이것저것 배워 보기로 하고 중국어랑 영상편집을 한동안은 열심히 해봤다. 그러나 목적지가 없는 배는 금세 부유했다. 무엇보다 리포트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게 내 일이니까. 내가 배운 게 그 것뿐이니까. 너무 일하고 싶어 뉴스를 보는 게 괴로웠다.

후배의 세 번째 인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유가 없었고 전격적이었다. 선배는 그 속에서, 다시는 이 자에게 기자를 시키지 않겠다는, 기자의 명줄을 잘라 놓겠다는 살의를 느꼈다. 무덤 위 잡초를 베는 낫질의 무심함과 부지런함으로 70명 기자들의 생명이 시시때때로 뎅겅 뎅겅 잘려 아무데나 던져졌다.

2. “정치적 외풍이 아니라 MBC 정상화를 염원하는 구성원의 총의”

- ‘[보도부문 34기 성명] 김장겸 사장은 퇴진하라’ 중에서

3. “균형이 맞지 않는 주장을 5대5의 주장인 것처럼 보도해오지 않았는지”

MBC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 중 하나입니다.

기사에 굳이 안넣어도 되는 내용인데도,

윗분들은 저 얘기를 했습니다.

공영방송 MBC가 그들의 주장을 뉴스로 전하는 것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탄핵 찬반 여론이 8대2의 압도적인 차이로

마치 국민이 둘로 분열된 것처럼

보도해오지 않았는지..

대선 국면에서는 특정 정당의 주장에 비중을 두지는 않았는지..

- ‘[보도부문 조합원 1인 성명] 김장겸 사장은 즉각 퇴진하라’ 중에서

4. “‘MBC스페셜’만 촛불시위와 탄핵을 방송하지 못했다”

- ‘[콘텐츠제작국 PD 성명] 방송을 막고 PD들을 모욕한 경영진은 MBC를 떠나라!’ 중에서

5. ‘강한 야당방송’ 되겠다고요?

-‘[보도부문 36기 성명] 김장겸 사장의 유일한 기여는 퇴진 뿐이다’ 중에서

6. “그가 꽃길을 걷는 동안, MBC는 몰락했다”

사장의 약력이다.

2013년 5월 보도국장

2017년 2월 MBC 대표이사 선임.

(…) 그 사이 해고자들의 고통은 심대해졌다. 이용마 기자는 암과 싸운다. 마이크를 빼앗긴 기자들은 여전히 영업부서로, 자회사로, 지원부서로 떠돌고 있다.

우물이 말랐다. 우물 판 자들을 돌아오게 하라. 이제 진짜 뉴스를 하자.

7. “품격있는 방송을 하고 싶습니다”

하물며 언론사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인 신뢰도와 영향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현 경영진은 그 職의 무거움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만 자리에서 물러나 주십시오.

8. 언론 적폐 한가운데 MBC가 있다

(…) 김장겸 사장과 그 부역자들은 알아서 떠나라!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