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KBS와 MBC의 뉴스를 보지 않은 건 꽤 오래된 일이다

비민주적 정권을 뒤엎고 등장한 새 정부라면 한층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유지해햐 한다는 데 딜레마가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권력의 주구이든 뭐든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앉아 사사건건 사보타주를 하는 한 언론개혁은 불가능한 일 아닙니까? 보수언론은 새 정부가 KBS와 MBC를 장악해 어용언론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합니다. 이 경우에도 그런 비판은 새 정부가 정말 어용언론을 만든 다음에 해야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06-12     이준구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페이스북

저녁 8시부터 시작해 한 시간 반 동안 계속되는 뉴스쇼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던지요.

내가 JTBC 뉴스룸의 광팬이 된 것은 그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이 큰 작용을 했지만, 다른 방송의 뉴스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도 이에 못지않게 큰 역할을 했음을 부정하기 힘듭니다.

"도대체 내가 왜 그런 방송을 보려고 시청료를 내야 하나?"라고 한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과거의 정권들도 언론과 권력기관에 자기편 사람 심어놓고 권력 보위의 방편으로 사용한 것이 아느 정도 사실이기는 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완전한 권력의 주구로 타락시킨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30년 전 전두환의 철권통치에 진저리를 내던 그 시절이 새록새록 기억에 떠오릅니다.

9시를 알리는 시보가 땡하고 울리자마자 전두환이 화면에 나온다고 해서 생긴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정도로 언론을 사유화한 정권은 당분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와 같은 분위기는 MB정권이 들어서면서 180도로 바뀌게 됩니다.

KBS와 MBC를 완전히 장악한 MB 아바타들이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잘라내거나 한직으로 좌천하는 일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바로 그때였습니다.

오직 '공정방송' 하나를 위해 일한다는 젊은 언론인들의 자존심을 잔인하게 짓밟아버린 MB 아바타들은 우리 언론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KBS와 MBC가 정권의 주구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사업 관련 보도에서 한 점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두 방송의 뉴스를 켜면 언제나 4대강사업의 허황된 청사진으로 점철된 용비어천가만 볼 수 있었습니다.

비판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이 두 방송은 끝끝내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 비극을 막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습니다.

새 정부가 드디어 KBS와 MBC에 손을 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적폐'야 말로 가장 시급하게 청산해야 할 적폐라는 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그런 일을 별 스스럼없이 마음대로 처리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부패한 권력의 주구이든 뭐든 임기를 보장해 주는 것이 맞는 일입니다.

새 정부가 KBS와 MBC를 망친 주범들에게 알아서 물러나라고 압력을 가하나 봅니다.

그러나 편파보도를 일삼아 공영방송의 정신을 유린한 사람들을 솎아내는 것 그 자체가 어떻게 언론 장악과 같은 말이 될 수 있습니까?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또 한 번 머리에 떠올리게 됩니다.

백보를 양보해 그 세력의 어떤 한 개인이 그것은 MB와 박근혜의 작품일 뿐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변명하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어떤 보수언론은 새 정부가 KBS와 MBC를 장악해 어용언론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명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합니다.

공영언론을 망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행위 그 자체가 어용언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요.

솔직히 말씀 드려 나 자신도 이 상황에서 새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한 번 솔직히 고백한다면 이런 고민을 하기가 싫어 정치와 담을 쌓고 사는 겁니다.

처참하게 망가져 청취자들의 외면을 받는 공영방송을 지금 이 상태로 놓아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공정보도 하나만을 자존심으로 삼고 격무를 마다하지 않는 수많은 젊은 언론인들이 보람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시대가 다시 찾아오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6월 10일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