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상필, 어느 이방인의 죽음

지난달 필립 클레이라는 이름의 40대 남성이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그는 열 살 때 미국에 입양되어 30년간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다가 추방되어 한국에 와 있었다. 그에게 국적이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를 입양한 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뒤 그는 친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의 지인들은 그가 한국어를 못해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증언한다. 자살은 그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2017-06-08     김현경

우리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일이지만, 미국에는 필립 클레이처럼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이 꽤 많다. 그들은 양부모의 무지와 소홀함 때문에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다가 성인이 된 뒤에야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 의회는 2000년 입양아에게 자동적으로 국적을 부여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 의해 2000년 이후 입양된 아이와 당시 18살 미만인 입양아는 모두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이 법은 1983년 이전 출생자, 즉 이 법이 발효될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입양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결과 미국에는 현재 3만5천명에 달하는 무국적 입양인이 있다. 그중 1만8천명은 한국인이다. 이들은 직업을 구하기 힘든 것은 물론 사회보장 혜택도 받지 못하고 사소한 범법행위로도 추방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이것을 전적으로 '미국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말로 하자면, 노예가 노예인 것은 그를 위해 나서주는 제삼자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제삼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국가다. 어린 김상필(필립 클레이의 한국이름)을 입양 보내면서 한국 정부가 포기한 것은 바로 이 제삼자의 역할이다. 국가가 개입을 포기할 때 아이들의 운명은 전적으로 그들을 맡아준 사람의 선의에 달려 있게 된다. 하지만 아이를 입양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입양된 지 넉달 만에 살해된 현수의 사례는 '선한 양부모'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