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간섭할 일이 아니다

나 자신도 그러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것은 국가권력이나 권력자가 역사문제에 대해 특정한 방법이나 내용, 심지어는 권력자의 개인적인 소신이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의 부당함 때문이었다. 도대체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이 학문적 문제나 역사기술에 관해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다른 사람도 아닌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지시한 문 대통령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고대사의 연구방향과 내용을 '지시'하는 듯한 방식으로 공식 회의를 통해 발언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경솔한 일이다.

2017-06-08     김철
ⓒ뉴스1

나 자신도 그러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던 것은 국가권력이나 권력자가 역사문제에 대해 특정한 방법이나 내용, 심지어는 권력자의 개인적인 소신이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의 부당함 때문이었다. 도대체 대통령이라는 국가기관이 학문적 문제나 역사기술에 관해 시시콜콜 간섭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점을, 다른 사람도 아닌 국정교과서의 폐기를 지시한 문 대통령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가야사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한 함부로 발설할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고대사의 연구방향과 내용을 '지시'하는 듯한 방식으로 공식 회의를 통해 발언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고 경솔한 일이다.

나의 걱정은 기우가 아닌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문 대통령의 저러한 언급이 있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제4제국의 실체를 밝힌다"느니 "고대 가야의 찬란한 문화"가 어쩌니 하는 따위의 맞장구치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제4제국이라니! 시쳇말로, 어이가 없네.) 존재하지도 않는 고대 제국의 영광에 도취된 민중, 그러한 환상을 권력 유지의 발판으로 삼는 독재자, 20세기 파시즘 권력은 그렇게 작동했다. 그 말로가 어떠했던가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위대한 고대 아리안 민족'의 신화에 도취되었던 나치독일, '천손강림의 고대신화'를 주문처럼 외우던 일본제국주의를 보라. 멀리 갈 것도 없다. '단군의 왕릉과 유골을 발굴'했다고 주장하는 '주체 사회주의 북한'의 처절한 블랙코미디는 어떤가? 설마 그들을 본받고 싶은 것인가? 이념적-정치적 입장의 차이를 떠나 21세기 한국인은 걷잡을 수 없는 국수주의의 광풍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가 엄습한다. 골방에 홀로 앉아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하고 중얼거리며 자기도취에 빠진 백설공주의 계모 같은 모습이 오늘날 한국인의 역사의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지나친 말이면 좋겠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광화문 광장에서 들어 올린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새 정부가 광적인 극우쇼비니즘의 나팔을 불어대는 파시스트 권력의 의장(意匠)을 걸칠 것이라고는 정말로 믿고 싶지 않다. 참모들의 이의 제기를 '의무'로 지시한 문 대통령의 진심을 믿고 말한다. 가야사든 뭐든 학문 연구는 연구자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간섭하지 마라. 고대사 연구든 현대사 연구든 정부는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