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열흘 동안 '풀 메이크업'을 해봤다

2017-06-02     박수진

지난 3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 카페에서 김정현(24)씨가 오른쪽 눈 아래 점막을 검은색 펜슬 아이라이너로 채워나갔다.

화장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40분. 비비크림이 덮인 김씨의 이마 위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김씨는 “여자가 ‘쌩얼’을 하면 ‘화장도 안 하냐’는 타박을 받고, 남자가 색조화장까지 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며 “화장에 대한 차별이나 불평등을 직접 느껴보려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지난 30일 ‘풀메이크업’을 한 김정현(24)씨가 사용한 화장품들.

프로젝트를 주도한 고려대생 최기선(21·자유전공)씨는 취지에 공감하는 친구들과 기획단을 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참가자들을 모집했다. 화장품은 주변에서 기부를 받고, 모자라는 부분은 사비로 해결했다.

참가자 13명은 지난 25일 열린 첫 모임에서 화장법 강의를 들은 뒤, 일상생활에서 화장을 하며 겪는 어려움을 나누고 있다. 최씨는 “남성들이 귀찮고 힘든 점을 감수하면서 여성들의 고충에 대해 공감하는 것 자체가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의 한 강의실에서 진행된 ‘화장하는 남자’ 프로젝트 첫 모임에서 한 참가자가 화장 실습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알바노조가 편의점, 영화관, 음식점 등에서 일하는 여성 아르바이트 노동자 4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터에서 머리 색깔, 화장 등 용모 단정과 관련해 벌점을 주거나 지적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60%에 이르렀다. 응답자의 45%가 가장 힘든 점으로 꼽은 것 역시 ‘화장이나 옷차림 등의 외모 통제’였다.

김정현씨는 “여자친구가 화장을 했을 때 왜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기 싫어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최기선씨 역시 “(화장 때문에) 얼굴이 답답한 느낌이 들 뿐 아니라 행동도 하나하나 조신해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강박관념에 갇히게 되더라”며 “마음가짐이나 행동까지 사회적인 시선에 맞게 재단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프로젝트 기획단은 남성 참가자들의 화장한 모습과 소감 등을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오는 7일까지 이어지는 활동 모습을 담은 영상도 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