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유가족들을 생각하며

대통령이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함께 기리고 싶다"며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을 불렀다. 그리고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고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을 불렀다. 5.18 37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했던 나는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29년 만이었다. 세상에, 별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 동생, 박래전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불러주다니....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았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일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 있다니, 나도 별 수 없이 유가족인가 싶었다.

2017-05-29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뉴스1

글 |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

29년만이었다. 세상에, 별로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 동생, 박래전을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불러주다니.... 뜻밖의 큰 선물을 받았다. 너무도 감격스러웠던 그날 오후 내내 기자들의 전화에 시달렸지만 가급적 담담하게 소감을 전하려고 했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일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수 있다니, 나도 별 수 없이 유가족인가 싶었다.

12명의 이름을 부르는 글을 페북에 올렸다.

이처럼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죽음들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유족·유가족이다. 이 땅에는 억울한 죽음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 위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 해원을 못해줄망정 억울함을 풀겠다는 유가족들에게 가했던 가혹한 처사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유가족들은 유가족이란 이유로 감시와 사찰을 당해야 했고, 연좌제에 묶여서 고생해야 했고, 온갖 불이익을 당하고 이 악물고 살아야 했다. 그런 고통을 못 이겨서 세상을 등진 사람도 많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은 사연이 저마다 다르고, 억울함의 이유도 다 다르겠지만 유가족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상이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기억해 달라는 것은 알아달라는 것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유가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세상에서 잊히는 일이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것, 내 가족이 왜 죽었는지를 아무도 몰라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누군가가 죽어간 내 가족의 이름을 불러주면 감격하기 마련이다.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이유와도 같은 것, 그것이 호명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수없이 되뇌는 말이 있다. 자신과 같은 유가족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 그런 안전한 세상을 만들어야 저 세상에 가서 아이들을 떳떳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유가족과 동행하게 되면 그만큼 세상을 변화시킨다. 그런 유가족들의 견딤과 버팀과 걸음,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동행이 있었기에 세상은 좀 더 좋아졌고, 좀 더 민주화가 되었지 않았을까.

* 이 글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