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 포기하지 않는 마음

애원하고 애원해서 겨우 바꾼 것은 여성들을 들어낼 때 여경이 와서 할 것, 그리고 장시간 고착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초기에는 남자 경찰들이 와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끌어냈는데 오랜 항의 끝에 여경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그때 참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는데, 경찰들이 여경을 마치 '누이들'처럼 대하는 것이었다 상급 경찰은 여경들의 직위로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으로 부르기 일쑤였다. 오죽했으면 듣다 못한 활동가들이 상급 경찰에게 여경들에게 하대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다.

2017-05-23     전쟁없는세상
ⓒ뉴스1

강정, 10년 동안의 싸움

2011년 강정해군기지 반대투쟁이 육지로 알려지고 전국적인, 전세계적인 연대의 손길이 닿았을 무렵, 나 또한 제주에 내려왔다. 마을 삼촌들은 좀 더 일찍 와 주지 그랬냐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이미 찢겨진 마음들은 되돌릴 수 없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없는 연대의 발걸음에 힘을 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연행과 구속 일인당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벌금뿐이었다. 한번 시작된 공사는 멈추는 법이 없었고 마을의 해안선은 급속히 파괴되었다. 깊은 절망과 좌절, 세상에 대한 원망은 곧 서로에 대한 서운함으로, 미움으로 마을을 잠식해 갔다.

강정에 산다

국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강정에 왔던 전국각지의 경찰들은 상부의 지시와 명령에 철저히 복종했다. 사람이 숨을 헐떡이며 넘어가도 고착을 해제 하라는 명령이 없이는 한 발짝도 공간을 내어주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있으면 밥 먹는 식판과 함께 들려 나갔고, 손을 잡고 있으면 손가락을 하나씩 꺾어 들고 나갔다. 발버둥 칠수록 경찰 손아귀의 힘은 세졌다.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경찰들은 말단 중에서도 가장 말단. 무전기를 들고 있는 지휘자들은 대장 행세를 하지만 사실상 중간관리자였고 가장 윗선은 서장이나 청장 때로는 총리, 청와대였다. 현장에선 언제나 말단 권력과 싸울 수밖에 없었는데, 때로는 이 말단 권력인 의경들과 싸우는 것이 괴롭기도 했다. 우리나 그 의경들이나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힘없는 이들끼리의 싸움밖에 남지 않는다. 늘 책임자들은 너무나 멀리 있었다.

인간띠잇기가 끝나고 해군기지 진입도로에서 찍은 사진. 강정투쟁10년, 구럼비 기억행동 주간을 알리고 있다. (사진 제공: 호수)

국가 공권력이 여성을 대하는 방식, 보호하거나 희롱하거나

보호의 대상자인 아군의 여성과 희롱하고 강간하고 살해해도 무관한 적군의 여성을 나누는 전쟁의 한 단면처럼 국가는 이곳에서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었고, 그 한복판에서 강정주민들과 지킴이들, 평화활동가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제압하고 무력화시켜야 할 그 무엇이었다. 국가에 의문을 품는 것으로도 죄가 되는 것, 그 주장의 합리성이나 정당성은 무시되는 경험은 군대의 모습과도 무척이나 닮아 있다. 분쟁의 현장에서 국가는 거대한 군대가 되어 작전을 수행하듯 저항자들을 압사시킨다. 그렇게 2016년 2월 26일 해군기지가 완공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했고 그만하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강정에 있을까?

더불어 나에게 큰 배움이 된 것은 사람을 존재 자체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성별, 학벌, 나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투쟁의 과정에서 활동을 통해 신뢰를 쌓고 존재로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모습은 때로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주었다. 서로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한편으론 온전히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 성별, 나이, 학력에 관계없이 공동의 활동을 하기에 동료로서 마주할 수 있는 공동체를 이곳 강정에서 경험하고 있다.

강정에서 만난 평화

잘 된다고 호들갑 떨지 않고, 잘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고, 매일을 살며 내 삶에서 군사주의를 걷어내는 것.

일사분란하게 치고 들어오는 국가 권력의 폭압 속에서도 인간성을 잊지 않고 기어이 노래를 부르는 것.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