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밍아웃 스토리] 9. 나의 사랑하는 트랜스젠더 딸

커밍아웃 후 1년 반 만에 처음으로 아이와 둘이서 여행을 다녀왔다. 길을 가다가 호기심에 가득 찬 주위의 시선에 태연한 척 해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시하다가도 한 번씩 짜증을 내곤 한다. 아이가 평생토록 주위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하다가도 '엄마인 내가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하며 속으로 되뇌곤 했다.

2017-05-17     성소수자 부모모임
ⓒPekic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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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커밍아웃

집에 둘만 남게 된 어느 날 아이가 옆에 오더니 할 얘기가 있다고 말을 붙여왔다. "엄마에게 할 말 있는데..." 결혼? 아니면 무슨 안 좋은 일? 스치듯 여러 생각을 하던 와중에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은 "나, 트랜스젠더야"

아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은 여자라고 생각해왔고 현재 상담을 받으면서 여성호르몬 치료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커밍아웃을 하면, 가족을 믿기는 하지만 최악의 경우 집에서 쫒겨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35살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이기 쫓겨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 사건 이후 나는.

그 동안 어째서 나와 나의 가족, 특히 우리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원인이 무얼까 마음 아파하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가 30년이 넘는 시간을 혼자 고민하고 아파하며 지낸 걸 생각하면 죄책감도 생기고 혼란스러웠다.

그분이 바로 트랜스젠더 아들을 두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클라라 윤'씨로 PFLAG 아시아계 성소수자들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시는 분이다.

클라라 윤씨는 2016년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아시아 LGBT 부모모임 초청 포럼'에 참석했고, 나는 어색한 마음으로 강의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클라라씨에게 다가가 첫 인사를 하는데 입을 떼기도 전에 눈물부터 쏟아졌다. 어떻게 소개를 끝냈는지 기억이 없을 정도로. 이렇게 클라라씨와 만나며 자연스럽게 한국 성소수자 부모모임에서 일하시는 부모님들까지 만나게 되었다.

부모모임을 알게 되면서 처음으로 서울시청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도 참석하였다. 몇 년 전 시카고에서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신나는 축제 분위기에 많은 기업들의 후원, 얼굴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정치인들까지 정말이지 놀라운 광경이었다.

반면 서울에서의 퍼레이드는 또 다른 면에서 나를 놀라게 하였다, 방송에서만 보았던 기독교단체의 혐오세력들이 피켓을 들고 외치는 구호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었고 그들의 신념은 정말로 놀라웠다. 이어서 대구 퀴어퍼레이드, 올랜드참사 촛불집회, TDOR(트랜스젠더 추모의날) 등 각종 행사에 참가하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 아이가 겪어야 할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부모모임에서 활동하면서 나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친구들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아직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쩔 수없이 나도 그들과 한 배를 타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동안은 불편하고 해결하기 힘든 문제로만 치부하고 애써 눈감았던 문제들이 하루아침에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나의 과제가 된 것이다.

1년 뒤 다시 만난 나의 딸

길을 가다가 호기심에 가득 찬 주위의 시선에 태연한 척 해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도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시하다가도 한 번씩 짜증을 내곤 한다. 아이가 평생토록 주위의 불편한 시선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하다가도 '엄마인 내가 괜찮다는데 무슨 상관이냐. 내 아이는 내가 지킨다.' 하며 속으로 되뇌곤 했다.

물론 내 아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이 점점 담담하게 느껴지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매달 부모모임에서 '나는 트랜스젠더 딸을 둔 엄마입니다'를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서로 웃고 울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자신이 단단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조금씩 주위에 커밍아웃도 하고 우리주위 어디든지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무엇보다 성소수자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기도 하고...

'성소수자라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편견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