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시감 | 갑을오토텍 변론과 MBC 시용기자 옹호

누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고, 쓰레기 같은 인간에게도 똑같이 보장되어야 하는 기본권 차원의 문제라고 주장한다면, 노조의 기본권이 파괴된 상황에도 문제의식을 가지는 게 일관되다. 갑을오토텍은 부당노동행위, 파업방해, 노조원 폭행, 노조파괴 등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매우 공격적인 방식으로 무력화시킨 노동기본권 파괴의 백화점 같은 사업장이다. 변호인으로서 조력받을 권리를 옹호한 기본권 보장차원의 행위니 문제없다고 방어하려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이 기본권을 대하는 일관되고 올바른 태도다.

2017-05-15     이선옥

갑을오토텍 노동자 가족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6년 8월 11일 서울 갈월동 갑을오토텍 본사인 갑을빌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회사의 노조파괴 중단과 직장폐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 한겨레

그렇다고 해서 민사소송은 쿨한 분쟁일 뿐 권리보장의 문제가 아닌가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노조의 민사소송은 파업, 부당해고, 임금체불, 가처분 등등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관련된 사안이 대부분이다. 노조 대리와 사측 대리를 대등한 사인간의 쿨한 법적대리인 문제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박 비서관의 행위에 대해 "아니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 변호하는 게 왜 문제냐, 기업 변호하는 게 뭐가 문제냐 그건 변호사의 일인데"라고 말하려면,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해서도 "노조가 자신들의 권리인 파업을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똑같이 쿨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일관되다. 각자 자기 일 열심히 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인가, 라는 태도라면 그렇다.

또 한 가지, 해당 로펌에 고용된 을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무력한 갑을 관계 속의 약자로 그를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 아무개 비서관의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로펌의 구성원 변호사는 정 하기 싫거나 부담인 소송은 피할 수 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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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정규직이 그런 실수를 하면 괜찮고, 비정규직이 실수해서 문제인가,",

"인터뷰한 사람이 무슨 죄인가, 인터뷰어가 계약직인 게 무슨 상관이냐"

"이 고용 불안 시대에 MBC의 시용기자에 지원한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며, 회사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는 절대약자인 이들의 행위를 비난해선 안 된다"는 옹호로 이어졌다.

"그들은 회사가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힘없는 계약직이다"라는 말은, 행위 당사자로서 그들의 주체적인 선택과 행위를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우리는 MBC 노조의 파업을 왜 지지했는가? 언론의 자유와 그것이 지켜 줄 민주주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파업을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지성을 가진 이들이 파업 파괴 인력을 먹고사니즘으로 옹호하는 사태는 어떻게 봐야 할까?

MBC의 정규직 조합원들도 회사와의 관계에선 약자다. 파업은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가 가진 최고의 투쟁 수단이며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이를 파괴하기 위해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일이다. 시용기자는 그런 기본적인 사회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언론인이 된다는 뜻이다.

언론인은 다른 어느 직종보다 민주주의에 민감해야 하는 분야 아닌가. 먹고사니즘에 별 문제 없었던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걸고 파업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우리는 그래서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었으니까.

국가기구의 하위관료인 '나'는 폭력진압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민주주의와 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위험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다는 인식, 고용불안 시대의 약자인 '나'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시용직에 지원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먹고사니즘을 해결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는 '나'는 파업을 파괴하는 대체 인력 투입을 거부해야 한다는 인식. 그것이 결국 구조 안에서 개인의 행위를 용인 받을 수 있는 평가 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