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니까'가 이유가 될 수 없는 이유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에 있어서, 저는 이것이 절대 군 인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군 인권 문제와 생각의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 동성애자가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습니다. 경찰이 그들을 잡아가 취조하며 '좋아하는 체위는 어떤 것인지' '동성과 관계를 맺은 횟수는 몇 번인지'등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군대 내에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었을까요? 심지어 영내에서 관계를 가진 것도 아니고, 성인과, 합의하에 관계를 맺은 군인이 구속되었을까요? 답은 하나입니다. 군인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017-05-12     표범
ⓒMari via Getty Images

지난번에 올린 글이나, 평소 제가 올린 글을 보고 가끔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군인의 처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가요?"

"무척 많습니다."

저의 연인은 현재 군인입니다. 비단 저의 연인뿐 아니라 제가 아끼는 많은 동생과 친구들, 그리고 심지어는 친인척 중 매우 가까운 사이의 남동생까지 현재 군인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인을 군대에 보낸 분들은 대부분 훈련 기간 동안 훈련소에서 올려주는 사진들을 찾아보기 바쁩니다. 어디 소대에 몇 번째 줄에 있더라는 등, 모두 같은 머리 스타일을 하고 같은 옷을 입어 구분이 어려운 인파 속에서도 콩알만하게 나온 연인의 얼굴을 구별해내고, 그것을 저장하여 몇 번이고 바라보는 일. 모두가 기쁨으로 여기는 그 일을 저는 단 한 번밖에 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장의 사진이 저를 너무나도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거 아닐지 모르는 그 사진 한 장. 바로 얼굴도 모르는 장병들이 속옷만을 입은 채 신체검사를 기다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가까이 있는 사람은 등줄기부터 엉덩이를 포함한 모든 신체 부위 뒷부분이 다 드러난 상황이었습니다. 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대체 이것을 왜? 얼굴을 보여주고 장병들의 생활을 전하는것이 목적이라면 대체 이사진은 왜 여기에 올라와 있을까?

사회에서는 잘 만들어지고 잘 빚어낸, 자신이 자신 있는 몸매와 상황을 갖추어 자신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는 업로드되지 않을 누군가의 벌거벗은 사진이, 군대라는 이름 속에 속하자마자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운 것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저는 두렵고 참담했습니다. 저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연인의 사진을 찾아보러 훈련소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벌거벗은 날것의 모습을 그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타인인 제가 목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동성애자 군인 색출사건에 있어서, 저는 이것이 절대 군 인권과 떼어놓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는 군 인권 문제와 생각의 궤를 같이합니다. 사회에서는 성인 동성애자가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감옥에 갇히지 않습니다. 경찰이 그들을 잡아가 취조하며 '좋아하는 체위는 어떤 것인지' '동성과 관계를 맺은 횟수는 몇 번인지'등을 묻지 않습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그렇게 해도 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성행위를 강요하거나, 원하지 않는 신체적, 언어적 성애 표현은 성별을 떠나 성폭력이며 범죄입니다. 그런데 이성애자 군인이 영내 밖에서 동의하에 이성과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그들을 처벌하거나 잡아가나요? 오로지 동성애자인 군인에게만 이것이 '잘못'으로 적용됩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A 대위는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감옥에 앉아 있을 것입니다.

결국 저는 '동성애자'에 국한되어 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것은 변명이나 잘 보이려는 뇌물성 글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것을 원했더라면 저는 좀 더 이슈가 될 수 있으나 논란이 일지 않을만한 주제를 택해 글을 썼을 것입니다. '안전하고' '모두가 편하고' '재미있는' 글들을.

어떠한 계급이나 집단을 특징짓고 구분하여 그들을 탄압하는 일은, 절대 단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일어납니다. 모두가 '그 정도쯤은 괜찮지'라고 하는 생각의 틈을 노립니다. 모두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간과할 때, 물은 이미 사람들의 발치까지 올라와 찰랑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스스로' 내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말해주겠지 하지 말고, 언젠가는 더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어서 무기력하게 기다리지 말고, 왜 이것은 말씀 안 하시나요, 왜 이것은 신경을 안 쓰시나요 하고 남에게 묻지 말고 자신이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부당함과 불합리함을 직시하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변화는 운명의 바퀴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투쟁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우리의 등을 똑바로 펴고 투쟁해야 한다. 네 등이 구부러지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네 등에 올라탈 수 없다." -마틴 루터 킹.

억지로 굽혀지는 일이 더는 없기를 바라며 연대를 표합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