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프포스트 인터뷰] 윤여정, 어른은 열심히 일한다

2017-05-11     김도훈

배우 윤여정은 정말이지 식당에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이 식당을 개업하는 리얼리티 예능을 만드는 피디라고 가정해보라. 음식을 푸짐하고 맛깔나게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대접해야 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식당의 주인이자 요리사가 되어야 하는 노년의 배우 중 누구를 캐스팅하겠는가. 당신은 한국의 대표적 MSG 광고를 독식했던 두 명의 배우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윤여정은 아니다. 일단, 누구도 윤여정이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서서 가족을 위해 밥을 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상상하지는 못할 테니까.

윤여정은 고전적인 의미로 미디어가 소비하는 ‘엄마’는 아니다. 그는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물론 윤여정에게는 많은 엄마 역할이 떨어졌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작별', '거짓말', '네 멋대로 해라'에서도 그는 엄마였다.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로는 생전 처음 ‘국민 할매'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엄마로 기억하지 않는다. 엄마 역할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그는 당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기 위해 따뜻한 밥을 차려주는 엄마로부터 멀어진다. 다 큰 당신이 징징거리며 엄마를 찾는다면 윤여정은 당신의 옷장에서 꺼낸 스키니진과 스니커즈를 신고 ‘그만 징징거리고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고 한마디 툭 내뱉을지도 모른다. 타박하지도 야단치지도 않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건 꽤 놀라운 일이다. 71살의 여배우로 활동하면서 ‘엄마’나 ‘할머니’의 이미지를 유행 지난 모피코트처럼 걸치지 않고 한국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도통 가능한 일이 아니다. 윤여정은 그렇게 드문 생존의 증거를 2016년에 가장 근사하게 증명했다. 그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 속에서 도무지 그 나이의 여배우가 해내지 못한 경지의 날을 보여줬지만 몸 파는 ‘박카스 할머니’로 등장한 이재용 감독의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정말이지 죽여줬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죽여주는 여자'가 생의 마지막 절벽에 서서 낭떠러지 같은 시대를 바라보는 영화라는 것이다. 여기에 원망의 기색은 없다. 윤여정은 비극으로 추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게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의 소수자들과 약자들을 품는다. 노인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듯이.

그런 점에서 윤여정이 '죽여주는 여자'를 하고 나영석 피디의 예능을 한 것은 전혀 이율배반적이지 않다. 티브이엔(tvN)의 '윤식당'에서 그는 전형적으로 미디어가 제시하는 노인과 엄마의 방식으로 우리를 ‘힐링’하려들지 않는다. 대신 윤여정은 일한다. 열심히 일한다. 돈을 벌어 식당을 계속 하기 위한 직업인의 동력으로 일한다. 바로 그 덕분에 '윤식당'은 일하는 우리들에게 존경할 만한 어른의 품위를 보여준다. 우리는 윤여정을 엄마로서 곁에 두고 싶은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곁에 두고 싶고, 그런 노인으로 늙고 싶다. 나영석도 그 사실을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너구리 같은 이 남자가 식당이라는 콘셉트에 도통 어울리지 않는 윤여정을 캐스팅한 뒤 ‘윤’식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윤여정을 지금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자체 시청률 16%를 경신하고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에서 동시간대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윤식당’ 현상의 중심에는 분명히 윤여정이 있다. 예능이라는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에게 인생의 새로운 롤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다른 어른’ 윤여정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는 윤여정을 보며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린다. 그중 하나는 분명히 ‘모던’이다. 윤여정은 우리 시대 가장 모던한 배우 중 한 명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로 모던함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당신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윤여정은 “그래서 대체 뭐에 대한 인터뷰를 하는 거냐”고 묻는다. 가감 없이 솔직하게 팀이 내밀었던 기획안 그대로 말했다.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시랍니다. 꼰대가 가득한 세상에서 젊은 친구들이 친구처럼 좋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어르신 배우라고요.” 윤여정은 대답 없이 “여기 냅킨 참 좋네요. 냅킨이 두껍고 좋아. 집에 가지고 가야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당신도 발리에서 식당이 헐리던 상황을 티브이로 지켜봤을 것이다. 당신이 본 것은 밖으로 빠져나온 여드름의 일부일 뿐이다. 더 살 떨리게 아픈 상황은 피부 아래 곪아가고 있었다. 다만, 윤여정이 그 현장에서 가장 침착한 존재였다는 사실은 익히 추측할 수 있다. “작가들이랑 감독이랑 막 울더라고요. 작가 중 한 명은 드러누우려고 그랬다네.” 윤여정은 드러눕지 않았다. “많이 놀라셨나요?”라고 묻자 “아뇨. 그러면 이제 집으로 가야 하나 싶었죠 뭐. 나영석한테 다른 프로그램은 뭐 하고 있나 물어봤더니 '신혼일기'라는 걸 한대요. 그래서 그걸 연장해서 방영하면 되겠구나 싶었죠 뭐.”

'씨네21' 인터뷰에서 나영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편애가 있으세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요. 그게 좋은 사람일 때도 있고 나쁜 사람일 때도 있지만, 호기심이 있으면 알고 싶어하시고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현하세요.”

윤여정은 사람을 믿는다. 솔직한 사람을 믿는다. 그녀와 일하기 위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은 공치사를 날리면서 유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솔직한 사람이다. 솔직한 사람과 손을 잡기 위해서는 솔직해져야 한다. “나영석은 솔직하고 정직해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이야기해요. 우리 모두 그랬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잘 모르잖아요. 영화나 드라마 하는 사람들이 ‘절 믿으세요. 이거 대박입니다’라고 하잖아요. 근데 나영석은 ‘저도 몰라요 선생님. 해봐야 아는 거죠. 선생님한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라고 해요. 전 그런 게 더 신뢰감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그건 곧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엔터테인먼트의 세계에서 솔직함은 부도덕이다. 모두가 말에 설탕을 바르고, 모두가 헛된 공약을 날린다. 한국의 정치처럼 말이다. “대통령 선거도 똑같아요. 공약 하나도 안 지켜지잖아요. 다 뻥이었지 뭐.”

그렇다면 궁금해지는 게 하나 있다. 배우 윤여정의 인생전략이다. “난 진짜로 없어요. 젊었을 때는 뭔지도 모르고 배우를 하다가, 당시에는 결혼 적령기라는 게 있어서, 그 나이에 시집을 가는 게 너무 당연해서 시집을 갔죠. 그 시대에 시집은 대통령 선거보다 더 중요했으니까요. 내가 그때 무슨 대단한 여권운동가도 아니고, 사회풍조가 그러면 시집을 가야 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결혼 전에는 제가 굉장히 잘하는 애고 유명한 앤 줄 알았어요. 연기를 다시 해보니까 너무 못하더라고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내가 틀렸다는 건 알겠더라고요. 그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화녀'와 '충녀'로 스크린을 장악했던 젊은 배우는 어느 날 카메라 앞에서 중년이 됐다.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 시대였다. 도무지 떨어지는 역할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연기를 했다. “그때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목숨을 걸고 했죠. 너무 못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어요. 돈도 필요했으니까 단역이든 조연이든 뭐든 했어요. 그게 보약이었죠.” 윤여정은 예순이 되고 나서야 홀로 결심을 했다고 말한다. “여유롭고 사치스럽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사치가 뭐냐면, 내가 하고 싶은 역할만 내가 하고 싶은 사람과 해봐야겠다는 거예요. 저는 지금 그걸 실현하는 단계니까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제가 나영석이 싫었다면 예능을 뭐 하러 했겠어요. 지금 인기를 끌어야 할 이유도 없고요.”

“그 시나리오 얘기를 들었을 때, ‘과연 하실까’라는 의구심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라고 물었다. “내가 안 해주면 누가 하겠어요. 세상에 그런 역할을 누가 해줘요.” 이 대답은 윤여정과 이재용의 오랜 우정을 파악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이다. 두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서로를 믿는 친구이자 예술적 동지이자, 때로는 못된 농담으로 틱틱거리기도 하는 가족이다. “이재용이 아니고 다른 감독이 그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으면 아마 안 했을 수도 있겠죠. 위험하니까요. 이 나이에 막 벗고 그런 역할 하고 싶겠어요? 그런데 이재용이니까 했어요. 사람을 알고, 사람을 믿고 일한다는 거, 그게 제일 중요하겠죠.”

윤여정은 곧 새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자를 연기한다. 복싱 선수와 장애인 형제의 억척스러운 경상도 엄마다. 윤여정은 경상도 사투리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도전이다. 사투리를 제대로 연기하는 건 도무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충 흉내 내는 것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종종 어떤 사투리는 완벽한 외국어에 가깝다. 대사에 감정을 싣는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 구사하는 언어의 뉘앙스를 덧입혀야 한다. “맞아요. 도전이에요. 알아줘서 고마워요. 제가 늘그막에 도전의식이 또 남아 있나 봐요. 뭔가 변신도 하고 싶고, 그런데 변신을 하고 싶다고 (한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얼굴에) 점을 찍고 나올 수는 없죠. 그래서 사투리를 해보기로 했어요. 내가 어떻게든 마스터를 해보겠다고 결심했죠.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한 곡을 치는 데 40분이 걸려요. 잘 보면 손이 그냥 움직이는 거죠. 몸이 그냥 가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겠어요. 제가 터득한 진리 중 하나는 연습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천부적인 사람들이 가끔 있을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어요. 그러니 노력, 노오력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래서 이 나이에 노력하는 그 길을 한 번 또 가보려고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윤식당'의 가장 감동적인 순간들이 나온다. 윤여정은 이상하게도 '윤식당'에서 지나치게 열심히 일한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끊임없이 불평하면서 대체 뭘 하려고 이따위 프로그램에 나오겠다고 했느냐며 자책하고 질책하는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윤여정은 배신했다. 나영석도 놀랐다. “이분도 어쩔 수 없이 개발과 산업화를 거친 세대시구나 했죠. (돈 벌기 위해) 인형 눈알 박기를 해야 하면 당장 오늘 100개는 하실 분이더라고요. 원래 ‘아유 오늘은 장사가 안됐지만 뭐 어때, 서진아 남은 불고기 먹으면서 수영이나 하자꾸나’, 이런 풍경 정도를 생각했어요. 장사 안되면 큰일 날 것처럼 그러시니까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풀려도 되나’ 걱정이 되더라고요.”('씨네21' 인터뷰)

“내가 음식을 잘할 줄은 모르지만 신선한 재료를 뜨겁게 만들어야 맛있다는 건 알죠. 카메라가 돌아가든 말든 나는 음식을 손님들에게 제대로 대접을 해야 하는 거죠. 그것 하나에 목숨을 걸었어요.” 그는 말을 이었다. “나이가 있다고 편하게 (방송)하는 그런 거는 안 하려고요. 일을 할 때는 일을 해야죠. 내가 출연한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제가 배우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이제 빠질 거라고는 매너리즘밖에 없잖아요. 그러지 말고 어떻게든 좀 바꿔보려고 돌파구를 노리는 거예요, 지금.”

안철수가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져가지고 ‘제가 안철숩니아아아’ 그러더라고요. ‘아니, 야, 안철수도 저렇게 하는 데 나도 한번 해보자. 안철수도 득음을 했는데 나도 할 때까지는 해보자’ 그랬죠.”

이 인터뷰가 나가고 나면 이미 대통령은 결정됐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JTBC 선거방송에 출연한 윤여정도 만났을 것이다. 손석희의 섭외 전화를 받은 윤여정은 “(해본 적이 없는 선거방송이라서) 무섭고 떨리고, 제이티비시도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어서 (배우인) 나를 부르는 게 아니겠어요? 머리를 굴려봐야죠”라고 말한다.

*이 기사는 한겨레ESC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