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결과와 '근대성의 지배'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두 배 이상 득표했다는 대구경북 지역 출구조사결과가 공개될 때, 60대 이상에서 홍준표 후보가 제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보도가 나올 때 이 '대구경북노인들'은 한국을 아직 전근대의 영역에 붙들어놓는 망국의 근원으로 지목당한다. 2000년대 후반이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해 "정치에 관심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청년세대들을 '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확정짓는 시기였다면, 놀랍게도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기 전에 화살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우파정권의 변명불가능한 실책만의 소산이 아니며, 그동안 한국인들이 정치체의 핵심으로 간주해오던 가치 자체가 이동했음을 함축한다.

2017-05-10     이우창
ⓒ뉴스1

2000년대 후반이 김용민의 "20대 개새끼론"을 비롯해 "정치에 관심없는" "나약하고 무력한" 청년세대들을 '나라를 망치는 주범'으로 확정짓는 시기였다면, 놀랍게도 그로부터 채 10년이 지나기 전에 화살의 날끝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우파정권의 변명불가능한 실책만의 소산이 아니며, 그동안 한국인들이 정치체의 핵심으로 간주해오던 가치 자체가 이동했음을 함축한다. 10년 전 보수적인 노년층과 386을 중심으로 한 '진보적' 중년층은 90년대 후반 학번부터의 20대들에게 (그 방향이 어느 쪽이든) "헌신"을 요구했다. "열정", "참여" 같은 것들은 그저 단순히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가 아니라,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그 에너지를 정치체 혹은 보다 큰 공동체에 쏟아붓는 "덕성의 인간"이 되도록 권장하는 사고체계의 파생물이다.

19대 대통령 선거 지역별 개표 결과 © DAUM

19대 대통령 선거 연령별 출구조사 결과 © DAUM

중요한 사실은 규범적·기술적(descriptive) 모델의 변화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해온 가치응축개념 "근대적인 것"과 결합했다는 것이다(심지어 박사모조차 "근대"를 대놓고 거부할 수 없으며, 드문 예외는 좌파로부터 발원한 동아시아론자들 중의 급진파, 가령 "역사학자" 이병한 같은 이들뿐인데, 이들은 근대성과 함께 합리성 또한 포기한 소수로 간주되어 아직까지는 대체로 무시받고 있다). 이제 사회와 인간을 사고하면서 합리적인 모델을 우선적으로 적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근대성에 부합하지 않는 존재로 평가받는다. 왜 박사모가, 박근혜와 홍준표를 지지하는 이들이 젊은 세대들로부터 그토록 조롱받는가? 이것이 더 많은 젊은 세대들이 "진보적"이 되었다는 뜻인가? "진보"가 80-90년대식의 용법으로 쓰인다고 할 때, 젊은 세대는 결코 더 "진보적"이지 않다. 단지 보수·중도·진보에 걸쳐 더 많은 사람들이 서구 근대적 합리성을 당연한 표준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따라 그러한 정치적 합리성에 부합하지 않는 박사모 및 기타 지지자들을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존재, 합당한 판단력을 가지지 못한 이들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말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 [BeGray]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