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TV토론 유감

어떤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토론을 통해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토론의 핵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토론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으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가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지난 TV토론에서는 중요하기 짝이 없는 미래가 실종되고 오직 과거 얘기만 판을 쳤습니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겠느냐에 대한 대답 아니겠습니까?

2017-04-25     이준구
ⓒ뉴스1

사실 단지 실망에 그쳤던 것이 아니라 토론을 보는 시간 내내 엄청나게 짜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선후보의 토론이란 나라를 이끌어나갈 경륜과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말의 잔치여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본 두 번의 토론에선 자신의 의견을 내팽개치고 남 헐뜯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후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토론을 통해 대통령이 될 자질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의미가 있음을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토론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대통령으로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가 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 비난에 대해 케인즈는 "상황이 바뀌면 의견도 바뀌는 법입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습니까?"라고 맞받아쳤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 중요하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합니다.

국민이 듣고 싶은 것은 앞으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떤 태도를 취하겠느냐에 대한 대답 아니겠습니까?

더군다나 다른 후보를 헐뜯는 질문은 이미 며칠 전의 KBS의 TV토론에서도 숱하게 등장했습니다.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듣기 거북한 법인데, 확실한 답도 안 나오는 걸 갖고 매번 말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보기가 좋지 않더군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자질 검증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구도는 언론에 자질 검증의 일을 맡기고 토론에 임한 후보들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는 분업체제입니다.

두 시간이나 되는 토론을 상대를 헐뜯는 말싸움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비전이 제시될 수 있겠습니까?

상대 후보를 깎아 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돋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 토론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격의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사이에 좋은 정책대안이 스스로를 드러내게 마련입니다.

내가 지켜본 두 번의 TV토론은 그런 기본적인 예의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토론의 분위기는 전혀 대선후보들의 토론답지 못했습니다.

방송국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유권자들의 아까운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 이 글은 필자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