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재판 | 언제까지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감옥에 보낼 것인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되다가 무산되었다. 국방부는 이미 2007년 9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사회복무제에 병역거부자들을 포괄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모든 것은 백지화되었다. 그 후로 매년 500여 명이 다시 감옥으로 향해야 했다. 곧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나는, 그 대통령이 누가 되든 병역거부자와 병역거부자의 가족, 친구들이 견딘 3만 6천 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그리고 다양한 양심의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리고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7-04-13     참여연대

글 | 황수영(참여연대 평화국제팀 활동가)

작년 11월쯤이었던 것 같다. 그가 나에게 이 이야기를 한 것이. 당시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떻게 결정하게 되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봤던 것 같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상담과 수감 지원을 하는 유일무이한 평화단체인 '전쟁없는세상'과 변호사 등과도 상의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던 것 같다.

국가 앞에서 개인의 양심을 낱낱이 증명해야 하는 시간

증인 :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를 2016년 초에 처음 들었습니다. 놀랐지만, 제가 보았던 피고인이라면 차라리 병역거부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전투복을 입은 피고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피고인 : "그런 신념에 특정한 종교적인 배경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을 억누르거나 물리적으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은 타고난 저의 본성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신념이나 양심으로 표현하자면 '비폭력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중략) 폭력과 억압에 대한 거부는, 당연히 무력행사를 본질적 기능으로 삼는 군대, 살상과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무디게 만드는 군대, 폭력을 내면화한 사람들을 사회로 배출시키는 근원지인 군대에 대한 거부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두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출소한 병역거부자가 또 다른 병역거부자의 변호사가 되는 세월

변호사 : "피고인의 변호인 중 한 명인 저 역시 비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입니다. 2005년 1월 28일 구속되었고, 이곳 서울중앙지법에서 1년 6개월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6년 5월 출소했습니다. 11년 전의 일입니다. 출소했을 때 저와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감옥행이 11년이나 계속될 것이라고 결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재판장님, 이 비극을 멈춰주시기를 간절하게 부탁드립니다."

11년 전 출소한 병역거부자가 변호사가 되어 같은 법정에서 또 다른 병역거부자를 변호하고 있었다. 최후 변론을 하며 변호사도 울고, 그 말을 듣던 방청석에 앉은 사람들도 울었다. 나는 웃으면서 옆에 있겠다던 다짐을 지킬 수가 없었다.

피고인 : "저는 국가라는 단위에서 군대를 통해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에 결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올해 스물아홉 살이 됐습니다. 20대의 마지막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고, 반드시 법정에 서야만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참함을 느꼈습니다. 부디 재판장님께서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평화적인 신념과 정체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일

그 와중에 누군가는 감옥에 갔고, 누군가는 출소를 했다. 출소를 한 병역거부자들을 전과자라고 놀리기도 했다. 평화운동에는 그렇게 늘 병역거부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병역거부자는 언젠가는 감옥에 간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처음 병역거부 재판에 방청 갔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 판사는 법정 구속을 준비하고 온 병역거부자에게 "법정 구속은 하지 않을 테니 신변 정리를 하고 검찰로 출두하라"고 말했다. 그 날도 똑같이 마음이 어려웠던 것 같다. 병역거부 운동을 오랫동안 해온 활동가가 언젠가 "수도 없이 했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누군가를 감옥에 보내는 일"이라고 말했던 게 어렴풋이 이해될 것만 같았다.

3만 6천 년의 시간

그 3만 6천 년에 대해 생각한다. 누구의 것을 뺏은 적도, 누구를 해친 적도 없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가족, 친구들의 3만 6천 년에 대해, 그 어려운 마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제 다음 주 1심 선고일이 되면, 여기에 또 한 명의 시간을 더해야 할지도 모른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은 노무현 정부 때 추진되다가 무산되었다. 국방부는 이미 2007년 9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사회복무제에 병역거부자들을 포괄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에서 모든 것은 백지화되었다. 그 후로 매년 500여 명이 다시 감옥으로 향해야 했다.

곧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대통령이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매일매일 이야기한다. 나는, 그 대통령이 누가 되든 병역거부자와 병역거부자의 가족, 친구들이 견딘 3만 6천 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그리고 다양한 양심의 무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그리고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