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
한 장씩 적으며 내 인생의 좋았던 순간, 힘들었던 순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최근의 3-4년간, 진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절망들이 있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이마저도 5번 문항까지 하니까 힘들었다. 끝까지 하려면 3개가 더 남았지만... 과감히 여기서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 와서까지 뭘 너무 열심히 하려 애쓰는 것 같아서. 여기에서만큼은 과감히 나를 놓기로(?) 했다.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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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온 편지 4] 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
너무 쉬고 싶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락가락하고 헐떡이는 내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갇히고 나서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내면의 아우성을.
사실은 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었기에,
하지만 식사를 하고 문이 철컥, 밖에서 잠기고 나자
차라리 안심이 되었던 것도 같다. 이젠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구나.
그렇게 거의 세 시간쯤 잤을까,
비록 사식(?)이지만 조그만 다완에 차를 내려서
내가 독방에 있는지, 휴가를 온 건지 모를 지경이었다.
사실 나는 잔디밭과 멀리 산이 보이는 방에 있기를 원했다.
처음에는 그게 불만이었지만,
갑자기 내 방 앞에 나란히 선 소나무가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그 좁은 땅에서도 서로 자리를 내어주고 팔을 뻗으며
나무들 사이에도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활엽수가 큰 키와 넓은 잎으로 햇빛을 가리면,
그 사이로 담쟁이는 둘둘 말고 올라가고.
하지만 이 나무 두 그루는 달랐다.
조금씩 서서히 간격을 벌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로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앞에 있는 휴휴 책자를 펼쳤다.
최근의 3-4년간, 진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절망들이 있었다는 걸
'내가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계속 이대로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그리고 조금씩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까지 하려면 3개가 더 남았지만... 과감히 여기서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에서만큼은 과감히 나를 놓기로(?) 했다.
창 앞의 소나무를 보며 그림도 그려보고, 시도 썼다.
혼자 있으니 저절로 글이 써져서 신기했다. 뭔가를 바라보고 생각할 여유가 주어져서일까.
이렇게 좀 더 있어도 괜찮겠다 싶을 때쯤, 끝을 알리는 좌종이 울렸다.
하지만 바로 나가고 싶지가 않고 오히려 아쉬움이 몰려왔다.
20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지만 확실히 나를 충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루를 쉬어버린 덕분에 해야 할 일이 밀렸지만, 미련은 없었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경험할 기회를 주신 행복공장 스탭 분들께도 감사하다.
글 | 금민지 ('나와 세상을 바꾸는 독방 24시간' 참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