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노예'가 된 월가 펀드 매니저의 자살

2017-04-10     원성윤
ⓒ한겨레

그의 자살은 부가 인생의 행복과는 별 상관이 없고, 오히려 돈의 노예가 된 월가의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로 월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9일 장문의 기사를 통해 전했다.

하지만, 그가 쌓아올린 성공과 부는 오히려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만을 자아냈고, 최근 들어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그는 성공과 부를 이루면서 용기와 지혜를 얻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봤던 실패했을 경우의 참담한 나락에 대한 공포만을 키운 것이다.

철학과 문학을 좋아하고 대학의 조정 선수이기도 했던 머피는 대학원 시절에 투자금융에 관심을 보여, 1985년 골드먼삭스에 입사하며 월가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사회 초년병 시절의 대부분을 런던의 금융가 시티에서 지냈다. 보험회사와 관련된 거래를 성사시키고, 탄탄한 관점의 금융분석으로 호평을 받았다.

1990년대 말부터 닷컴 바람이 불자, 그는 큰 돈벌이 기회를 보고서는 모건스탠리를 그만뒀다. 닷컴 기업들의 상장을 돕는 신생 금융회사 ’앤트팩토리 홀딩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자리를 옮겼다. 머피는 월급은 동전 한잎만 받고 대신에 자사주 배당을 받았다. 회사가 상장되거나 매각될 경우, 대박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그의 꿈은 좌절됐다.

그는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사왔다. 3300만달러나 주고는 맨해튼의 고급 타운하우스를 샀다. 하지만, 이번에도 페어필드 그린위치의 상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에, 이 회사는 2000년대 월가의 최대 금융스캔들의 하나인 버나드 매도프의 다단계 금융사기에 빠졌다.

자금난에 시달린 그는 자신의 집을 팔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펀드회사 ’폴슨 앤 컴퍼니’의 소유주인 억만장자 존 폴슨을 만났다. 폴슨은 금융위기가 절정이던 당시에 그 금융위기의 원인이던 모기지 증권과 은행들의 가치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는 200억달러를 투자한 상태였다. 그는 떼돈을 벌었고, 이를 가지고 보험회사에 투자하려 했다. 폴슨은 머피의 재능을 인정하고는, 그를 고용했다.

2015년 3월 머피와 폴슨은 에이아이지의 최고경영자 피터 핸콕을 만나서 회사 분할을 제안했다. 에이아이지가 거부하자, 머피는 월가의 헤지펀드들을 포섭했고 억만장자 투자가 칼 아이칸을 끌어들였다. 압력에 못견딘 에이아이지 쪽은 폴슨과 아이칸에게 이사직을 제공하며, 타협을 모색했다. 폴슨은 2016년 4분기에 자신이 소유한 에이아이지 주식의 절반을 팔아서, 두자리수 이익율을 올렸다. 머피는 폴슨에게 수백만달러를 벌어줬다.

머피는 업계의 헤지펀드 매니저들에게 주가가 오른 상황에서 매력적인 투자 대상을 찾기 힘들다는 고충을 토로하곤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머피는 피곤함과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서, 아내는 그에게 정신과 상담을 받게 했다. 우울증 진단이 내려지고, 약 처방과 면밀한 관찰을 받도록 했다.

지난 2월21일 머피는 아내를 자신의 저택 공동 소유자로 등기해줬다. 그 저택의 가격은 3650만달러, 여전히 매입가보다는 높았다.

다음날 머피는 아내와 아들들과 아침을 먹고는 직장으로 갔다. 아내는 머피에게 “당신 좋아보인다”고 말했고, 머피는 “아주 좋아”라도 답했다. 그는 오전에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근처의 소피텔 호텔로 갔다. 호텔 방에 들어간 그는 곧 창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머피는 자신과 가족들을 위해 일군 생활을 유지하는데 자신을 모두 소모했다. 그의 자질은 부를 쌓아올리는데 기여했으나, 그 재산을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는 공포를 막는데 아무런 역할을 못했다. 월스트리트는 찰스 머피를 성공시키고 부자가 되게 했으나, 행복은 그를 피해갔다.”

의 기사 중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