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까칠남녀' 메인 진행자, 박미선의 품격

2017-04-08     곽상아 기자
ⓒEBS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까칠남녀> 진행자 박미선

“따님께도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렇게 무책임한 남자를 만나도 오케이 하실 거예요?”

교육방송(EBS)이 새로 선보인 젠더토크쇼 <까칠남녀> 2화를 보던 이들이 손꼽아 베스트로 뽑은 이 장면을 만든 진행자는 바로 박미선이다.

는 프로그램 안팎으로 매회 뜨거울 수밖에 없다. 방송인 서유리나 <이기적 섹스>의 저자 은하선, 단국대 서민 교수와 같은 여성주의자 패널들이 주도하는 대화는 늘 망설임이 없고, 기존 한국사회 남성들의 시선을 대변하는 패널 정영진과 봉만대 감독 또한 물러섬 없이 부딪친다. 덕분에 이제 고작 2회 전파를 탔을 뿐인 <까칠남녀>는 이미 찬반양론이 격돌하는 화제의 프로그램 반열에 올랐다. 교육방송 프로그램이 이처럼 화제의 중심에 놓인 게 <생방송 보니 하니> 이후 얼마 만인지. 매주 월요일 깊은 밤 <까칠남녀>가 방영된 직후 소셜네트워크에 접속해보면,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여성편향적이라며 화를 내는 이들부터, 정영진과 봉만대가 보기 불편하다며 말 통하는 사람들만 출연시키라고 외치는 이들까지 극과 극의 반응을 만날 수 있다.

이 뜨거운 대립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전체 분위기를 부드럽게 아우르며 교통정리를 하는 것은 박미선의 몫이다. 제작발표회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하면서 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패널분들과 전문가분들의 얘기를 들으며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이라며 한 발 뒤로 물러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던 박미선은, 촬영 현장에서는 기존의 사회통념이 여성에게 강요해 왔던 굴레에 대해 명확하게 짚어 이야기하며 패널들의 토론을 독려한다. 논쟁이 지나치게 과열됐다 싶은 순간 슬그머니 치고 들어와 상황을 정리하고 토론을 다시 본궤도 위로 올리는 솜씨도 흠잡을 곳이 없다. 박미선은 자기 목소리가 강한 패널들의 격론을 잠재우며 ‘모두를 위해 어떤 피임법이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인가를 이야기하자는 것이고, 이야기해보니 콘돔이 가장 적합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논의의 맥을 짚어 요약해낸다.

에서 시사와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남성 패널들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지키는 역할을 한 바 있고, 문화방송 <세바퀴>에서는 입담으로 무장한 중년의 여성 패널들 사이에서 말의 길을 터주는, 웬만한 내공의 진행자들은 엄두도 못 낼 일을 해냈다. 같은 방송사의 가상 결혼 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에선 출연자들이 미처 다 몰두하지 못한 로맨스의 빈틈을 끊임없는 추임새로 이어 붙여낸다. 데뷔 이후 30년간 쉬지 않고 늘 우리 곁에 있었던 그 친숙함 때문에 종종 간과되곤 하지만, 박미선은 유재석이나 손석희 제이티비시(JTBC) 보도부문 사장 정도를 제하면 비견할 만한 다른 진행자를 떠올리는 게 불가능한 진행자다.

를 통해 데뷔할 때부터 이미 박미선은 동시대 다른 여성 코미디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다른 코미디언들이 분장이나 슬랩스틱, 유행어 등으로 사람들을 웃겼다면, 박미선은 말과 말이 충돌하며 생기는 리듬감과 온도의 차이를 활용해 사람들을 웃겼다. 1988년 문화방송 <일요일 밤의 대행진>을 통해 선보인 출세작 ‘별난 여자’는 지금 봐도 촌스럽다는 느낌 없이 준수한데, 춤을 추는 박남정을 보고 “어머, 날렵해”라고 감탄해 놓고는 바로 뒤이어 특유의 심드렁한 말투로 “제비 같아”라고 첨언하는 것으로 보는 이의 허를 찌르는 광경은 3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위력적이다. ‘별난 여자’ 코너를 함께 하던 1년 선배 정재윤과 함께, 박미선은 여성 코미디언의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송은이와 정선희를 위시로 해서 강유미와 안영미까지 이어지는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들 계보의 제일 위에, 박미선이 있었다.

를 진행하며 본인이 꿈꾸던 진행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콩트 시절에도 말재주 하나로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던 박미선은 진행자의 롤 또한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방송국 간에 코미디언들이 이적하는 것이 배신 행위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지만, 이적을 이유로 기용을 꺼리기엔 박미선은 너무 유능했다. 그는 에스비에스로 이적한 지 오래지 않아 고향인 문화방송에서도 다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박미선은 스튜디오 버라이어티(문화방송 <기인열전>, <사랑의 스튜디오>), 정통 코미디(한국방송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개그콘서트>), 라디오(문화방송 <김흥국 박미선의 특급작전>), 시트콤(에스비에스 <순풍 산부인과>)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여성 예능인으로 군림했다.

를 통해 메인 진행자에서 패널로 자리를 옮기는 충격을 처음 겪었고, 2008년 한국방송 <해피투게더3>에 합류할 때엔 고정 멤버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일단 한 달 기용해보고 결정하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2015년 신봉선과 함께 <해피투게더3>에서 방출에 가까운 석연치 않은 진행자 교체를 당했을 때, 박미선은 “쓸데없는 분란 없이 조용히 마무리됐으면 좋겠다”고 상황을 마무리했다. 박미선은 어느덧 그 세대 여자 예능인 중 최후의 생존자가 되었다.

의 메인 진행자란 사실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그는 허수경, 정은아, 이금희 등과 함께 보조 진행자에 머무르던 여성 진행자의 지위를 능력 하나만으로 메인으로 끌어올린 첫 세대의 일원이고, 나이 든 여성 연예인에게 야박한 한국 방송계에서 지금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한 제 세대의 유일한 생존자다. 무엇보다, 그는 남자 연예인들에게 입에 발린 뻔한 칭찬 대신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하는 ‘별난 여자’ 아니었던가. 여자에게만 유독 더 가혹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논의를 시작하자는 쇼를 진행하기에 이만한 적임자가 또 있으랴. 다음주에도 이 ‘별난 여자’는 민감한 이슈를 논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무거운 주제를 버겁게 여기지 않도록 분위기를 띄우며, 격론이 지나간 자리는 “우린 서로의 이야기를 더 주의 깊게 경청해야 한다”는 대원칙으로 쓰다듬을 것이다. 마치 그 만듦새가 완벽해 바느질 자국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천계의 옷, 천의무봉의 경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