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

우리는 왜 언어를 만들어 소통하는 걸까? 다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건 독버섯이다!' '저기 호랑이가 와요!'라는 사실을 서로 소통하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맞다.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 언어는 듣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행위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해주는 걸까? 말하는 사람에겐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설명하기 더욱 힘든 현상은 지난 수십만년 동안 인간의 듣는 능력, 청각기관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으며, 말하는 능력, 즉 구강 구조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현저히 발달해 왔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청각 기관은 개만도 못하다.

2017-03-24     정재승
ⓒselimaksan via Getty Images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이야기와 뇌

이야기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드물다. 언젠가 사석에서 〈살인자의 기억법〉의 김영하 작가가 이것을 '설동설'로 표현하는 걸 들었다.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이 아니라(지동설), '이야기를 중심으로 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야기 형식으로 쓰인 성경이라는 책 하나만으로 인류는 이집트를 탈출하기도 했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누군가를 사랑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문득 '김영하, 설동설'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내 글 외에도 20여개의 신문 기사와 칼럼이 설동설을 언급하고 있었다. 어떤 신문 기사에서는 마치 권위있는 학자의 학설처럼 설동설을 인용하고 있었다. 크로스의 독자들도 '설동설'에 얽힌 이야기가 나만큼이나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언어는 허풍의 산물

생각해보시라. 우리는 왜 언어를 만들어 소통하는 걸까? 다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언어를 통한 소통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생존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건 독버섯이다!' '저기 호랑이가 와요!'라는 사실을 서로 소통하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맞다.

이를 설명해주는 진화심리학적 주장은 언어가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건 '우리가 언어를 통해 진실만을 소통한다'는 가정 아래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내게 유리하게 상황을 몰아가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

우리는 내 지식이나 경험을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면서 조금이나마 매력적인 인간으로 드러내듯,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판단한다. 그 속에 과장이나 허풍은 없는지, 거짓말은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야기는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이야기 만들어야 뛰어난 리더

인지심리학자인 로저 섕크와 로버트 에이블슨은 이야기가 지식 축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뇌는 중요한 사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 형태'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엔 이름이나 얼굴을 저장하는 영역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야기를 저장하는 영역'(episodic-memory region)이 측두엽에 존재한다. 이곳은 운동을 기억하는 영역(자전거를 타는 법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과도 뚜렷이 구별된다.

게다가 '이야기 기억'은 용량도 엄청나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쉽게 잊히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뇌 속에 남아 있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1997년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자 로빈 던바가 했던 실험에 따르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공장소에서 말하는 시간의 65%는 사람에 관련된 이야기에 할애된다고 한다. 우리는 정말 남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 않는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는 함께 나눈 일련의 기억들을 둘러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이야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애정과 결혼의 가치를 확인한다. 스턴버그 박사는 결혼의 성공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궁극적으로 서로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이 어떻게 공동의 '이야기'라는 형태로 반복되면서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해주는가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마케터들은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매력을 더한다. 만약 제품 속 이야기가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면 비로소 그 제품은 주목받기 시작한다. 마케터들은 로널드 토비아스의 이야기 패턴을 자신들의 제품에 담기 위해 애쓴다.

이야기는 진화 과정의 소득

전혀 아니다. 입소문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걸 말하는 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너 아직 그 뮤지컬 안 봤니? 꼭 봐! 너무 감동적이더라"라는 뜻은 네가 그 뮤지컬을 못 볼까봐 걱정되니 놓치지 말고 보라는 뜻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뮤지컬을 볼 만큼 문화적으로 교양있고 경제적으로 윤택하며 삶의 질이 높다는 걸 은근히 과시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우리는 이야기로 세상을 배운다.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게다가 사회적 관계는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점점 알기가 어려워졌다. 구성원에 관한 정보를 확산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바로 이야기다. "걔 어때? 요즘 걔 뭐 하니?"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