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성교육이 아니다

섹스의 존재만 알 뿐, 그 행위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무지한 호기심만 많은 이들은 포르노를 보며 섹스를 배운다.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총기를 휘두를 확률이 높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섹스라는 행위를 실제적으로 접하는 계기가 포르노라는 사실 자체가 굉장히 위험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피임에 대한 개념도 없고, 청결에 대한 개념도 없고, 상호합의에 대한 개념도 없고, 만족스럽지 않은 섹스에 대한 개념도 없고, 함께 서로의 신체를 탐구할 필요성에 대한 개념도 없다. 그저 한 쪽이 넣으면 다른 한 쪽이 신음을 쏟아내고, 한 쪽의 만족감이 사정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되면서 끝난다. 그런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마주하는 섹스이다.

2017-03-22     박진아
ⓒpepifoto via Getty Images

*이 글을 EVE에서 설치한 청소년 '전용' 콘돔 자판기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헌정한다.

성(性)은 사적인 영역이 맞다. 그러나 적어도 섹스는 또 하나의 인간인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행위이기에 일말의 합의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합의가 구축되어야 했을 청소년기의 성교육 시간에 우리는 정자와 난자가 아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주구장창 들어왔다.

미완성의 성(性)

전환치료가 마치 유효한 정신적 테라피인 것마냥 받아들여지는 이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우리는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무엇을 배웠을까. 일단 섹스에 '입문'하기 전에 여학생은 노출이 있는 옷을 잘못된 옷차림으로 배우고, '하지 마세요' '싫어요'라고 말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면서도 남학생은 하지 말라고 하면 하면 안 된다고 딱히 배우진 않는다. 싫다고 말해도 진짜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 믿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어릴 때부터 여자애를 괴롭히면 '쟤가 너를 좋아해서 그래'라는 남이 나서서 말해주는 변명 뒤에 숨을 수 있었다.

극단적인 섹스만 보여주는 포르노를 제한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현실에서의 섹스는 어떤 것이고 어떤 요소들을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보완적인 교육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청소년의 비정상적인 성욕을 자극한다'거나 '원래 없었을 성욕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제공되지 않는다. 청소년기 이후에 우리는 법정이수교육을 제외하고서 성교육을 받을 일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미완성된 성(性)인식은 평생 그 사람의 일부로 남고, 또 그 사람이 마주하는 섹슈얼 파트너에게 영향을 미친다. 섹스에 주입된 음지성은 서로에게 피드백 주는 것조차 여의치 않게 한다. 내가 가진 섹스에 대한 관점이, 혹은 섹스에 임하는 방식이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는지 스스로 검열할 기회가 없는 성문화의 답습은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섹스에서 청소년을 배제하지 말라

한 걸음, 아니 열 걸음 양보해서 설사 통상적인 청소년에 대한 인식 - 아직 인간으로서 미숙하다는 인식 -이 사실이라 한들,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거치며 동일한 역사를 조금씩 다르게 배워왔듯 그 연령대에 합리적으로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으로 정보를 제공하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애초에 가르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는 그것이 유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심심찮게 올라오는 성매매업소의 찌라시나 '여동생' '길거리'만 검색해도 뜨는 무수히 많은 성적으로 왜곡된 이미지들은 외면되고, 미완성된 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데이트폭력과 강간과 살인은 축소된 이유로 그 탓을 돌리고, 무례가 무례인줄 모르는 이들에 의해 상처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개인적 차원으로 격하된다.

섹스와 쾌락과 상호존중 - 또 그 사이에 존재하는 윤리, 합의, 감성, 호혜성, 관계, 욕구의 주장과 한계선의 설정 등 - 은 '섹스'라는 하나의 행위의 연장선 상에 존재해야 한다. 그 맥락이 재단되고 있다면 다시 연결하기 위해서라도 교육은 필요하며 더욱 더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는 '그래도 청소년이 섹스라니...!'하는 다소 꼰대스럽지만 진심이 담겨있을 수도 있는 피상적인 우려보다 더 큰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이다. 성에 대한 포괄적인 기반의 마련은 비단 청소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왜곡되어있는 성문화 전체를 개선해나가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이후 성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를 구축할 방법이 없다면, 청소년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금욕교육은 성교육이 아니다

전면 삭감하였다. 삭감된 돈은 청소년의 피임교육과 원치 않은 임신을 예방하는 사업 등의 예산증가로 이어졌다. 금욕교육도 사실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의 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난 개혁이 아닐 수 없다.

콘돔을 제공하는 것은 성과 사랑이라는 삶의 요소를 '타락'시키거나, 성관계는 '쉬운' 것이라 주장하는 것과도 다르다. 단 한번도 섹스의 맥락에 대한 교육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가능하다면, EVE의 청소년 전용 콘돔자판기가 '국민정서'로 인해 차일피일 미뤄진 근본적인 성교육을 하루 빨리 구체화하고 실행하는 촉매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이 글은 비건 콘돔 브랜드 'EVE condoms' 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