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과 2013년 제주 강정 앞바다 모습(사진, 동영상)

2015-05-17     곽상아 기자
ⓒ녹색연합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한라산은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깝고 낮은 파도가 출렁였다. 이렇게 잔잔한 바다를 다이버들은 ‘장판’이라고 부른다. 지난 7일 오전, 배는 장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제주도 서귀포시 법환포구를 빠져나왔다. 강정 앞바다에는 크레인들이 삐죽삐죽 올라와 있고, 해변에는 거대한 테트라포드가 산을 이뤘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를 제주해군기지 공사로 만들어진 방파제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주변 바지선에는 방파제를 구성하는 케이슨(상자 모양의 철근콘크리트물)을 채울 골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김명진 기자가 직접 제주 강정 앞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1447.html

Posted by 한겨레 on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조류, 산호 꽃밭에 부는 바람

서귀포시 강정의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주변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연산호 군락이 펼쳐져 있다. 유네스코 생물권보호지역(2002년 12월), 천연기념물 제421호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2000년 7월), 천연기념물 제422호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2004년 12월) 등 7개 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2009년 송준임 이화여대 교수팀은 서귀포시의 의뢰로 서귀포 연안 연산호 실태를 조사했다. 송준임 교수팀은 ‘천연기념물 제422호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 산호 분포 조사 통합보고서’에서 섶섬, 문섬, 범섬으로 이어지는 연산호 군락은 서귀포 강정마을과 법환마을 그리고 범섬 사이의 ‘산호정원’에서 정점을 이룬다고 밝혔다. 연산호 군락은 산호정원에서 다시 서건도, 강정등대를 거쳐 서쪽 안덕면 화순리와 송악산 일대 앞바다로 펼쳐진다. 그러나 기차처럼 이어진 연산호의 꽃밭은 강정에서 끊긴다. 서건도와 강정등대 사이에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방파제가 생기면서부터다.

지난 8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 강정 앞바다에서 제주해군기지 방파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배 위에선 깨끗해 보였지만, 막상 입수하니 물이 탁해 바닥이 안 보인다. 부력조절기(BCD)의 공기를 빼고 하강을 시작한다. 10여m를 내려가 바닥에 닿았다. 김진수 대표가 지난해 연산호를 조사한 지점을 익숙하게 찾아간다.

지난 조사에서 쇠말뚝으로 표시한 장소에 도착하자, 강정지킴이 하쿠(별명)씨가 양쪽 쇠말뚝을 길이 10m의 줄로 연결한다. 쵱혱영씨가 방형구를 줄 위에 대면, 김 대표가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10m 줄을 따라 20여장의 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해마다 같은 장소에서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긴다. 일정한 면적을 덮고 있는 연산호의 피복도(특정 공간을 덮은 면적)의 증감을 조사하기 위해서다.

제주해군기지로 인한 연산호 서식 실태 변화 조사팀이 지난 8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 강정 앞바다 서건도에서 연산호 군락 조사를 하고 있다. 부유물로 시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가까운 벽의 표면도 확인하기 힘들다.

연산호는 부드러운 겉면과 유연한 줄기 구조를 갖춘 산호를 통틀어 말한다. 바닷속을 떠다니는 입자성 유기물이나 플랑크톤을 폴립(촉수)으로 잡아먹는다. 이 때문에 물의 흐름이 막힌 곳에서는 연산호가 살 수 없다.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된 뒤의 강정등대가 대표적인 경우다. 연산호 군락이 있는 수직벽에서 물의 흐름을 느낄 수 없었다. 김진수 대표는 “방파제 공사로 물 흐름이 막힌 강정등대 밑 산호 개체수는 50% 이상 줄었다. 고인 물에서 연산호가 점점 고사하고 있고, 아직 살아 있는 연산호도 배불리 먹지 못하니 성장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조사팀을 따라다니는데 몸이 갑자기 떠올랐다. 부력 조절 실패였다. 부력조절기의 공기를 빼려고 시도했지만 빠지지 않았다. 몸이 뜰수록 상승 속도도 빨라졌다. 다이빙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이다. 어떻게든 다시 하강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속절없이 떠올랐다. 일정 높이까지 올라오자 갑자기 몸이 한쪽 방향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빠른 조류가 몸을 잡아챘다. 상승하면서 한쪽 벽을 막고 있는 절벽이 없어지자 조류의 흐름이 강력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해군기지 인근 서건도 바닷속 수직벽에 가로세로 50㎝ 사각형 모양의 방형구를 대고 기록한 사진.

“김 기자가 경험한 것이 현재 강정등대 밑 바다의 상황이야. 연산호가 서식하는 깊이 9m 이하 바닷속에 원래 있던 해저절벽과 새로 생긴 해군기지 방파제가 양쪽으로 막아서 조류의 흐름이 완전히 차단됐어. 죽은 바다가 돼버린 거지. 하지만 몸이 수면 위로 떠오르니까 조류의 흐름이 느껴졌지? 원래 있던 강정등대 밑 바위가 막고 있던 부분 위로 올라오니까 수면에서는 조류의 흐름이 나타난 거야.”

“마스크 없이 황사에 입 벌리는 것” 

이튿날 오전에는 서건도 조사를 나갔다. 제주해군기지 동방파제에서 600여m 떨어져 있다. 조사는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됐다. 닻을 내린 줄을 잡고 수심 10여m 깊이로 들어갔다. 바닷속 시야는 많은 부유물로 강정등대보다 더욱 좋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 인근 서건도에서 촬영한 분홍바다맨드라미 군락의 해군기지 공사 전인 2008년도 모습.

기차바위에 가서 추가조사를 마치고 법환포구로 들어왔다. 항구 한편에서 고깃배가 자리돔을 내리고 있다. 조사팀을 바다에 태우고 간 강용옥 선장이 말했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자리돔 떼가 어디로 지나가는지 다 알고 있었어. 근데 지금은 물 흐름이 다 바뀌어서 물고기 떼를 찾기가 힘들어졌지. 지금 자리돔이 한창때인데 잡는 게 예전 같지가 않아.”

본격적인 해상공사가 시작되고 2년이 지난 2014년도 모습. 동굴 입구를 가득 덮고 있던 연산호 개체수가 줄어든 게 육안으로도 확연하게 구분된다.

제주해군기지가 본격적인 해상공사에 들어간 지 3년이 지났다. 공사는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바다의 많은 것을 바꿔놓고 있다. 올해 말 기지가 완공되면 수만톤급의 배들이 기지를 드나들게 된다. 항로 주변 수백미터 안에는 연산호가 군락을 이룬 산호정원과 기차바위, 서건도, 범섬, 강정등대가 있다. 바다는 더 변할 것이다. 바닷속의 변화가 바다 위로 터져나올 때쯤에는 연산호 군락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을지도 모른다. 조사팀과 일정을 함께한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제주해군기지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공사 추진의 절차적 문제, 주민들과의 갈등, 해군이 일으킨 해양오염에 대한 백서라도 남겨야 한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