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먹지 않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에서부터 각급 지방자치단체장에 이르기까지 행정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중립 영역을 법으로 제도화해 넓혀 나가면 된다. 이걸 공약으로 내걸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정치세력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편 정치세력이 집권했던 기간 동안 쌓인 문제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뜻일망정, 그로 인해 승자 독식은 강화되고, 반대편은 이를 갈면서 정치를 '밥그릇 수복'과 재청산의 기회를 얻는 투쟁으로 환원시킨다.

2017-03-13     강준만
ⓒGutzemberg via Getty Images

사실 문제는 통합 그 자체라기보다는 통합의 내용과 방식이다. 그간 통합은 주로 기만적인 정치적 선전 구호로 동원되는 개념에 불과했다. 지난 대선에서 '100% 대한민국'이니 '국민대통합'이니 하는 아름다운 말을 외쳤던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에 어떤 일을 했던가를 상기해보라.

문제의 핵심은 승자 독식주의에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체제에선 통합이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패배하면 모든 걸 잃는 상황에선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을 살펴보거나 나라와 국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목숨 걸고 죽을 때까지 싸워야만 한다.

그런 습속엔 '조폭 의리'도 포함돼 있다. 윗사람이 무슨 짓을 하건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생각하는 게 크게 달라 복종하지 않고 이탈하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는다. 설사 못된 윗사람이야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언론은 왜 그런 엉터리 주장의 확성기 노릇을 하면서 그 사람을 배신자로 몰아가는 공범이 되는가? 언론도, 그리고 많은 국민도 그런 '조폭 의리'에 오염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정치세력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반대편 정치세력이 집권했던 기간 동안 쌓인 문제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뜻일망정, 그로 인해 승자 독식은 강화되고, 반대편은 이를 갈면서 정치를 '밥그릇 수복'과 재청산의 기회를 얻는 투쟁으로 환원시킨다. '밥그릇'은 결코 천박한 용어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다. 그 어떤 명분을 내걸건 모든 정치투쟁의 심연에 자리잡은 근본 동기다. 그걸 천박하게 보지 않아야 공공적이고 생산적인 갈등을 전제로 한 통합의 길도 열린다. 나눠먹지 않는 통합은 불가능하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