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5500원짜리 커피를 먹는다

우리 대부분은 미래를 설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커피를 사먹는다. 차라리 커피 값을 아껴서 몇 년 안에 이 지긋지긋한 월세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야 당장 커피를 끊을 수 있겠다. 내집 마련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이것저것 포기하고 나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론 이렇게 해서 숨 쉴 여유를 만든 나는 내 세대 청년 중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운 좋게 평균 이상의 생활에 안착한 나는 이것저것 꽉 막힌 미래의 과업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 년에 한 번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그게 우리의 사치의 이유다.

2017-03-07     백승호
ⓒAJ_Watt via Getty Images

결론은 정해졌고, 커피 값이야 어쨌든 쟤들이 돈 없다, 힘들다 소리치는 건 그냥 니들이 나약한 탓이기 때문일 텐데.

물론 내 커피에 불만을 품은 어른들은 내가 먹는 1,500원짜리 커피를 기준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스타벅스 커피는 4,000원을 넘었고 좀 더 비싼 건 5,000에 육박한다. 휴일 같은 에누리도 없이 깔끔하게 30일을 곱해서 나온 가격은 15만원. 이제 액수가 적당히 크다. 사치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걸 아껴도 크게 윤택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애초에 그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매일같이 사 먹을 수 있는 사람도 몇 되지 않는다. 뭐 상관 있겠나. 결론은 정해졌고, 커피 값이야 어쨌든 쟤들이 돈 없다, 힘들다 소리치는 건 그냥 니들이 나약한 탓이기 때문일 텐데.

제일 슬픈 건 커피 먹으러 나갈 수 없는 거였다. 사소한 약속조차 잡을 수 없었다.

제일 슬픈 건 커피 먹으러 나갈 수 없는 거였다. 사소한 약속조차 잡을 수 없었다. 물론 내 이런 사정을 설명하자면 친구들은 그깟 커피 한잔이 대수겠냐고 사준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싫었다. 그냥 그런 상황 자체가 모두 싫었다. 나는 고시원에서 섬처럼 지냈다. 사람들과 단절된 채 둥둥 떠다녔다. 두어 평짜리 방, 사람 몸 하나 누이기 힘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들 섬처럼 지냈다. 그래 보였다. 나는 저녁밥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내게 커피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유복하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 한 손에는 커피. 젊은 애들이 밥을 굶는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다. 당신네 젊은 시절에 가난을 이기려 물배를 채웠단 이야기는 많이 보았다. 너희들은 우리 때보다 낫지 않겠느냐. 그런 말이 왜 튀어나오는지는 알겠다. 이해도 간다.

커피 값을 아껴서 몇 년 안에 이 지긋지긋한 월세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야 당장 커피를 끊을 수 있겠다.

그래서 커피를 사먹는다. 차라리 커피 값을 아껴서 몇 년 안에 이 지긋지긋한 월세 방에서 탈출할 수 있다면야 당장 커피를 끊을 수 있겠다. 내집 마련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이것저것 포기하고 나니까 숨통이 트인다. 물론 이렇게 해서 숨 쉴 여유를 만든 나는 내 세대 청년 중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운 좋게 평균 이상의 생활에 안착한 나는 이것저것 꽉 막힌 미래의 과업들을 포기하고 나니 일 년에 한 번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그게 우리의 사치의 이유다.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