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형사소송에서 승소한 이유

형사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저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군요. 아니, 오히려 법원이 말한 "틀린 표현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을 대부분 언론이 앞뒤 맥락 없이 인용한 탓에 오히려 법원이 나의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간주하면서도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한 것처럼 인식한 이들이 더 많아졌을 것 같기도 합니다. 가처분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에서 제가 진 이유를, 저는 명확하게 압니다. 달리 말하자면 형사소송에서 이긴 이유를 명확하게 압니다.

2017-02-20     박유하
ⓒ뉴스1

승소 이유를 알려드립니다. (긴 글입니다)

이 기자님 글을 보니, 저의 명예회복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는군요. 아니, 오히려 법원이 말한 "틀린 표현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을 대부분 언론이 앞뒤 맥락 없이 인용한 탓에 오히려 법원이 나의 의견을 "틀린 의견"으로 간주하면서도 "학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한 것처럼 인식한 이들이 더 많아졌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하, 참고하십사 하고 간단히 설명 드립니다.

그런 반성도 담아서, 5,6회 이어진 손해배상재판에서는 꼬박꼬박 출석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은 언제나, 10분 이내에 끝났습니다. 제출한 자료들을 앞 좌석에 앉은 양측 변호사들과 재판장이 확인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가처분재판과 손해배상재판에서 나는 판사에게 나의 생각을 충분히 호소할 수 없었습니다. 더 나빴던 건, 재판 대응 자체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의 위안부"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책에 대한 원고 측 지적이 악의적인 오독의 결과이자 모함이었다는 사실을 말하는 일에 중점을 두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두 재판을 맡은 판사들은 끝까지 제가 제출한 자료와 진술은 무시하고 원고 측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이 사건을 바라보았지요.

다시 말해, 저는 검찰과 원고 측의 모함과 억측과 아집의 논리 자체에 "논리"로 대처했습니다. 형사재판부가 나의 손을 들어준 것은, 오로지 형사재판부터 참여한 새 변호사의 "법리적 논리"와 그런 나의 "논리"가, 검찰이 앵무새처럼 대변한 기존 논리들의 문제점을 논파한 결과입니다.

형사재판부 판사와 내가 맞대면한 기간은 거의 1년이고, 10회 이상 재판을 통해 논박한 시간은 재판 때마다 거의 하루 종일이 걸렸으니, 수십 시간에 이릅니다. 이 기자님은 혹시 이 시간들 중 일부라도 방청하셨나요? 이 기자님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오류와 비난은, 방청하지 않으셨기에, 혹은 잘 듣지 않았기에 이루어진 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힘겹게 노력했고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신 결과로 승소했습니다.

또, 판사가 저의 손을 들어준 이유는, 무엇보다 저의 항변에 시간을 들여 귀 기울여 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기존 상식에 기대어 사태를 판단하지 않는 날카로운 직관과, 그런 직관을 만든, 인간에 대한 존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해와 납득이 아니라 오히려 적개심을 증폭시키고 그런 감정을 판결 왜곡으로 보여준 이 기자님의 칼럼, 연합뉴스와 뉴시스의 악의적인 사진으로 (연합뉴스는 원고 측의 악의적인 프레임을 정식고발 전에 유포시킨 곳이고, 뉴시스는 법정을 지켜보러 와 있는 저의 가족을 향해 제가 잠깐 미소 짓는 그 순간을 포착해 "웃으면서 법정에 들어서는 박유하"라는 캡션을 달아 유포시켰던 곳이지요) 변함 없이 마녀사냥에 골몰하는 수많은 기사들을 뒤늦게 접하고 보니, 저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날이 내 살아생전에 올는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법정에서 광장으로 | 재판경과

[형사1심] 〈제국의 위안부〉 최후진술

승소를 했음에도, 여전히 기존 틀에 갇혀 사물을 보려 하는 경직된 사고와, 재판을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행간의 의미를 모를 젊은 기자님이 , 판결문마저 곡해하면서 한 학자의 책을 "조악한 연구"라 공공의 장에서 말해 버리는, 그리고 어쩌면 그런 자신의 글을 "정의의 필봉"쯤으로 여길 오만이 빚은 폭력은, 온전히 이 기자님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무려 2년여나 국가 기관을 동원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책을 쓴 나를 공격하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곳이, 다른 곳이 아닌 내 나라여서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꽁꽁 뭉친다 해도 미래가 불투명하고, 오히려 우리가 잠시 봤던 자화상이 허울 좋은 신기루일 수 있다는 것이 하루하루 드러나고 있는 이 시대에, 진영논리가 만든 지적 태만에 기대어 오해하고 곡해하고 공격하고 반목하는 일에, 이 기자님 같은 젊은 분들이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이지 슬프군요.

포기와 체념과 허무에 맞서 이 시대를 견디고 건너갈 수 있는 힘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부디, "정의의 필봉"으로 사람을 하루하루 새롭게 죽이지 마시고, 판결문을 다시 읽어 보시고 사태를 제대로 이해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 재판에 정말 관심이 있다면 제가 재판부에 제출한 모든 자료들도 봐주시기 바랍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를 아실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