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서칭 메뚜기, "잘리기 전에 뛰어라"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와 유연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불안'과 '불편함'의 유무에서 엇갈렸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해고와 재취업에 대한 불안이 적었고,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는 불안이 컸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불편하지 않았고, 경직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불편했다. 그게 내가 체험한 전부다. 그리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2017-02-16     김채원

[코리아노마드 인 싱가폴] 잡서칭 메뚜기, "잘리기 전에 뛰어라"

#2. 싱가포르에서 4.5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과 함께 이직 소식을 알렸을 때 대부분 동료들의 첫 반응은 "축하한다"였다. 한국이었으면 "왜 떠나냐" "아쉽다" "누가 힘들게 했냐" 등등 다소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을 텐데, 덮어놓고 축하한다니. 참 의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노동시장이 유연한 싱가포르에선 평균 3-5년 내에 이직을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직이란 모름지기 그 사람의 몸값을 높이고 노동시장에서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자격증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직은 그 자격증을 몇 년 주기로 갱신하는 개념으로 인식됐다. 이질적인 직종을 계획성 없이 넘나드는 게 아니라, 일관성 있게 하나의 방향성 혹은 전략을 따라 움직인 것인 한, 이직은 매우 긍정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한 우물을 파라"는 획일화된 공식에 따라 한 직장에서 10년, 20년, 30년씩 근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 시장과는 딴판이었다.

#3. 싱가포르 등 외국에서는 이직을 위해 CV(Curriculer Vitae)라고 불리는 이력서 딱 한장만 준비하면 그만이었다.자기소개서인 커버레터(Cover Letter)를 요구하는 기업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채용 과정은 CV 하나 내고 끝난다.난 싱가포르에서 다니던 직장의 2차 인터뷰를 쇼핑몰 계단에서 휴대폰으로 진행했다. 1차는 대면 인터뷰와 1시간 가량의 까다로운 필기시험이었지만 2차는 의외로 간단해서 당황할 정도였다. 15분 가량 영국 런던에 있는 글로벌 디렉터와 통화를 마친 뒤 바로 다음 날 연봉과 처우 등이 적힌 오퍼레터(Offer Letter)를 받으면서 나의 첫 해외 취업은 마무리 됐다. 2년여 간 100군데 넘게 지원서를 날리고 30번의 필기시험을 치르고, 10번 넘게 1.차,2차,3차에 걸친 면접 전형을 진행하고 심지어 2박3일간의 합숙 인터뷰까지 본 뒤에야 2%밖에 안되는 바늘구멍을 통과했던 한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 너무도 간단했다. 한 나라의 노동시장이 유연한가, 경직되어 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취업 피로감이 이토록 달랐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대부분의 외국인 친구들은 CV를 마치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신분증인양 지니고 다니며, 업데이트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누구도 권고사직이나 해고, 실직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이같은 단어만 나와도 투쟁과 파업으로 강경대응하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 다름의 정도는 바로 노동시장이 유연한 곳과 아닌 곳의 차이만큼이나 분명했다.

한국에는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긍정적인 시각보다 강한 것 같다. 나는 이 개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노동시장 전문가도 아니다. 하지만 정치성향과 이념을 떠나 내가 몸소 체험했던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와 유연하지 않은 나라의 차이는 '불안'과 '불편함'의 유무에서 엇갈렸다.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해고와 재취업에 대한 불안이 적었고, 노동시장이 경직된 나라는 불안이 컸다. 또 노동시장이 유연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불편하지 않았고, 경직된 나라는 취업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불편했다. 그게 내가 체험한 전부다. 그리고 이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 매일경제신문(2016. 12. 25.)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발달에 따라 2025년이 되면 국내 취업자의 61.3%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해 국내 전체 근로자(2659만명)를 기준으로 하면 약 1630만명이 AI·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청소원, 주방 보조원, 매표원과 복권 판매원 등 단순 노무직 종사자는 실직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회계사,항공기 조종사, 투자·신용 분석가 등 전문직 종사자는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7. 1. 4.)

나는 노동시장을 경직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실직과 해고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취업과 재취업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유일한 해법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 한 사람이다. 내가 믿는 노동시장의 존재 이유는 노동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단체 등 사회와 노동을 제공하고자 하는 개인 간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접점은 시장의 변화와 진보의 속도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The idea that you study and then have a career in one company is gone. You need to renew your skills every five years. (평생 직장의 개념은 끝났다. 이제 우리는 매 5년마다 직업 기술을 갱신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17년 1월에 열린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기업인이 남긴 얘기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선택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실직과 해고로만 이해해선 안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여기선 취업과 재취업이 수월하다. 우리가 늘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노동시장의 선순환구조도 여기서 시작된다.

이같은 악의 고리는 사상최악의 취업난에 시달리는 밀레니얼 세대의 좌절과 기존의 전통적 일자리를 위협하는 4차 산업혁명이 만나면 재앙이 된다.

- 동아일보(2017. 1. 5.)

하지만 이미 우리는 기술의 진보로 언제 어떻게 어떤 직업이 순식간에 사라질 지 모르는 급변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유연한 재취업과 실력이 바탕이 된 재도전으로 시시각각 대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는 구조다.

나는 지난 10여년 간의 직장 생활 기간 동안 총 4개의 직업을 가졌다. 기자(2006-2010), 애널리스트(2012-2016), 마케터(2016-2017) 그리고 현재의 M&A 자문 컨설턴트(2017~). 그리고 앞으로도 몇개의 직업을 더 가질 계획이다. 경직된 한국의 노동시장을 떠나 코리아노마드로서 유연한 해외 노동시장을 경험했던 덕분이다. 혹자는 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고 폄하할 지 모르지만, 나는 진지하게 내 커리어의 일관성과 방향성을 면밀히 연구해왔다. 인접 직업으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전문성으로 더욱 많은 시너지를 냈고, 이종 직업 간의 결합으로 트렌드의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덕분에 옮기는 곳마다 언제나 퍼포먼스상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변이 없다면, 향후 5-7년 후엔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인접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 나의 선택은 '잡서칭 메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