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난민이었다. 트럼프의 난민거부행정명령은 존엄을 포기한 것이고, 효과적이지도 않다

한국인들은 제 경험을 하나의 기적이나, 특이한 일이라고 보고 편견과 싸워 쟁취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러한 제 경험이 난민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사회에 기여할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2017-02-14     Yiombi Thona

사람들은 종종 제게 왜 나라를 떠나게 되었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한 명의 난민으로서, 피난처를 찾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최소한 120일동안 난민들의 미국 입국을 중지시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에 대해 들었습니다. 특히 그런 중지는 시리아의 난민들에게는 무기한입니다. 비록 연방판사들이 행정명령을 잠정적으로 중지시키기는 하였지만, 아직 법원들이 그 명령의 합헌성에 관해 최종적인 평가를 하지 않았기에 이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한 싸움의 끝은 여전히 멀어 보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지금 말 할 수 있는 것은 이 행정명령이 그 자체의 핵심만으로도 차별적일 뿐 아니라, 세계에 있는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아주 깊은 상처를 주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난민들은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하며, 본국으로 쫓겨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국가안보'라는 명목하에 마냥 무시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사실 미국이 해외에서 널리 알리고 있는 가치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행동들입니다.

저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했던 위치에 있어 보았기 때문에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15년 전, 저의 조국 콩고민주공화국을 떠났고 그때부터 돌아 갈수 없게 되었습니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저는 콩고 국가 정보국(Congo's National Intelligence Agency)의 요원으로 고용이 되어 반정부 활동을 하는 단체나 야당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저는 조세프 카빌라(Joseph Kabila)대통령이 집권하고 난 대략 일년 뒤인 2002년도에, 카빌라 행정부와 반정부군 사이의 아주 더러운 거래에 관한 정보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보고서를 야당들에게 공유했고 곧 체포되어 구금되고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고난과 역경을 겪은 후 저는 나라를 떠나 대한민국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몹시 고된 6년의 시간이 지난 후, 저는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난민지위를 얻게 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광주라는 도시에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욤비 토나 광주대학교 교수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안전을 위해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나, 자신을 보호 해줄 수 있는 다른 나라로 가기까지 운좋게 가졌던 많은 기회들과 행운들이 없습니다. 지구상에는 여전히 난민에 대한 아무런 보호체계가 없는 난민캠프와 외국인수용소에 몇년동안 불확실한 상태로 무기한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권리들, 즉 일 할 수 있는 권리, 의료혜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 그리고 존엄하게 살 수 있을 권리들을 제대로 누릴 수 없습니다. 그들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들은 여전히 아직 많은 난민들이 지역사회에 융화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난민들은 여전히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그들에게 오직 하나의 선택권, 즉 '제3국에서의 난민재정착(resettlement)'만 갖게 합니다. 이것은, 아직 많은 나라들이 '난민협약'(Refugee Convention)에 가입하지 않았기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있는 내 동료들인 난민들에게 부분적으로 해당되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사실, 60억명이 넘는 지구 인구들 중 일부인 세계에 있는 전체 난민 인구의 0.6%만이 제3국으로의 재정착의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난민들이 미디어나 정치인들에게 다뤄지는 형태들은 저를 몹시 가슴아프게 합니다. '불법 이민자'(Illegal Immigrants)와 같은 개념들은 법률적으로 정확하지 않으며 자극적이고, 비인간적입니다. 난민들은 단지 그들이 머물렀던 고향 때문에 사회의 안전을 해치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지거나, 혹은 난민들이 단기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만으로 사회의 영원한 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편견은 기본적으로 사실이 아니며 말할 수 없는 공포를 목격하고 증언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만을 남기는 모욕입니다. 지난 13년간 수백명, 수 천명들의 난민들은 제게 만약 가능하다면 그들은 조국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꿈꾸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라로부터 떨어져 있음에 슬퍼합니다.

"과정은 느리고 감정적으로 인간을 메말라 죽게 합니다. 나는 거의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한편 우리 난민은 사회의 "블랙홀"이 아니며, 아직 활용되지 않은 경제적 자산입니다. 저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와 영어를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직 불어만 사용할 수 있었죠. 콩고에서는, 저는 저를 엘리트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에 온 뒤로는 저는 제가 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개사료를 만드는 공장에서 불법적인 노동을 해아만 했습니다. 지금 저는 영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고 대학교 교수이자 UN 위원회에서 발언하는 시민사회 활동가의 일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과연 한국에 짐입니까? 아니면 한국과 세계의 자산입니까? 한국인들은 제 경험을 하나의 기적이나, 특이한 일이라고 보고 편견과 싸워 쟁취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러한 제 경험이 난민들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답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사회에 기여할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그걸 꺠닫기만 하면 됩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 난민 재정착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상 재정착제도를 아시아에서 갖고 있는 유일한 나라들입니다. 난민 보호에 관한 이들의 헌신은 아주 좋지만, 양국에서 실제로 제공되는 전체 재정착 난민의 수는 매우 적고, 두 나라를 합쳐서 매년 150명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는 미국이 난민 정책에 실패하고 있는 이 시점에, 다른 나라들이 보다 도덕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접근은 다른 나라들로 하여금, 세계가 지금 필사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것 즉, 책임을 지는 나라를 등장하게 할 것입니다.

 

허핑턴포스트US의 'I Was A Refugee. President Trump's Rejected Ban Is Undignified And Unhelpful.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