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문을 읽으며 | 정치의 아마추어리즘

한 정치인의 "됨됨이"나 그릇은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만큼이나 어떤 자리에서 물러날 때 드러난다. 그점에서 반씨의 퇴임사는 얼마전 대선 경쟁에서 물러난 모 시장의 그것과도 비교된다. 한 사람은 경쟁에서 물러나면서도 남 탓을 한다. 다른 사람은 자기 탓을 한다. 그들의 속마음이나 "진면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민들은 남 탓하는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점에서 반씨는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큰 정치적 실책을 했다. 자신이 정치적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걸 대중에게 여실히 드러냈다.

2017-02-02     오길영
ⓒ뉴스1

 

(그리고 이런 구분은 문학장에도 적용된다. 사적 개인으로서 작가가 "순수"한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작가의 작품이 그저 "순수"하기만 하다면 그건 치명적인 결격사유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다. 내가 "순수"한 작가나 시인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다.) 정치인은 인간적인 면모와 동물의 기질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아무나 정치인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자기는 "순수"한데, 남들이 그런 "순수한 애국심"을 몰라줘서 정치를 못하겠다는 말은, 적어도 "동물"의 덕목이 지배하는 정치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유치한 말이고 행동이다. 마키아벨리의 지적대로, 정치인이 실제로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정직하고 인간적이고 신실"할 필요는 없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면 좋은 일이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실제가 어떻든(그리고 대중은 정치인의 실제 모습에는 별관심이 없다) 정치인은 그렇게 대중에게 보여야 한다.

사실이 중요하게 아니라 그렇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 나이브한 정치인들이나 정치평론가들은 이미지가 중요하지 않고 실제 모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정치에서는 대중에게 보이는 이미지, 말과 몸짓, 행동이 곧 현실이다. 외양이 곧 본질이다. 어떤 정치인의 "순수한" 속마음과 '선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종종 대중들은 정치인의 위선을 욕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위선이 정치의 필수적 덕목이라는 걸 밝힌 게 근대 정치이론의 시조인 마키아벨리의 핵심 공로다. 이런 '진실'을 밝혔기에 마키아벨리즘은 종종 무자비한 정치현실주의로 오해되지만.

반씨의 퇴임사를 읽으며 떠오른 말. "누구나 거의 다 역경을 견디어 낼 수는 있지만, 한 인간의 됨됨이를 정말 시험해 보려거든 그에게 권력을 줘 보라."(링컨) 한 정치인의 "됨됨이"나 그릇은 권력의 자리에 있을 때만큼이나 어떤 자리에서 물러날 때 드러난다. 그점에서 반씨의 퇴임사는 얼마전 대선 경쟁에서 물러난 모 시장의 그것과도 비교된다.(특정 정치인을 지지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비평가로서 두 사람이 내놓은 '텍스트' 분석을 하는 것뿐이다.)

한 사람은 경쟁에서 물러나면서도 남 탓을 한다. 다른 사람은 자기 탓을 한다. 그들의 속마음이나 "진면목"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민들은 남 탓하는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점에서 반씨는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큰 정치적 실책을 했다. 자신이 정치적 아마추어에 불과하다는 걸 대중에게 여실히 드러냈다. 아무리 마음이 쓰라리고 힘들어도, 정치인은 물러나는 순간에도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정직하고 인간적이고 신실"하게 대중에게 보여야 한다. 남탓을 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런 "신실"한 이미지를 대중의 마음과 기억에 남겨야 한다. 그래야 재기의 기회가 있다. 반씨는 그런 기회를 날렸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다. 반씨에게, 그리고 "순수한 애국심"을 주장하는 정치의 아마추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키아벨리의 말들이다.

 

(〈군주론〉)

- 다수는 외양에 따라서 판단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