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 나이앤틱 데니스 황 이사님께 보내는 편지

조금만 더 자세한 사운드 효과만 있다면... 메뉴만 읽어줬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정말 그 조금만에 대한 마음이 게임을 하는 내내 간절했습니다. 마치 그 조금의 간극이 사회에서 보이는 장애에 대한 작은 인식의 차이처럼 느껴졌습니다. 제가 직접 게임을 해 본 경험으로는 모든 것을 다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하지 않아도 지금의 효과들만 조금만 더 정밀하게 수정한다면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도 스마트폰 역시도 처음부터 시각장애인들에게 그 접근성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2017-02-01     안승준
ⓒKim Kyung Hoon / Reuters

30번 넘게 지내온 설명절이라 대부분은 익숙한 풍경들이었지만 올해는 대한민국에 상륙한 게임 하나 때문에 조금은 다른 장면들이 연출되었던 것 같다.

윷놀이와 고스톱마저 밀어낸 그 녀석은 우리집에서도 어린 조카녀석부터 환갑 넘으신 어머니의 시선까지 한 곳으로 모으는 가족통합행보를 보여주었다.

이 눈 저 눈을 빌려보기도 하고 여러 소리들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면서 나름의 손놀림으로 몇 마리를 잡기도 하고 레벨도 제법 올렸지만 이번에도 시력의 부재는 완벽한 만족감을 허락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조금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작은 연결들 그리고 집단지성의 힘이 모아진다면 나의 작은 노력이 그들에게 전달되고 우리는 게임과 장애인권의 역사에 길이 남을 변곡점 하나를 찍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마음으로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황 이사님! 저는 한국에서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특수교사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같은 시각장애인이기도합니다.

전 시력이 전혀 없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사운드효과 덕분에 조금의 도움을 받으면서 게임을 함께 즐길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열심히 게임을 진행하여도 가족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의 노력의 결과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은 큰 아쉬움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자세한 사운드 효과만 있다면... 메뉴만 읽어줬더라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정말 그 조금만에 대한 마음이 게임을 하는 내내 간절했습니다.

저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 컴퓨터의 스크린리더를 사용하여 편지를 쓰고 있고 스마트폰도 원활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게임을 해 본 경험으로는 모든 것을 다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하지 않아도 지금의 효과들만 조금만 더 정밀하게 수정한다면 시각장애인들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소프트웨어가 만들어지고 덧붙여지는 동안 늘 우리는 몇 년간의 시간차를 두어야 했습니다.

처음 단계에서부터 보편적 설계가 이루어진다면 앞으로의 응용분야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은 소외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포켓몬고의 주요 고객인 어린 시각장애인들은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가 들리지 않아도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같은 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웃음을 공유하는 일만큼 평화로운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포켓몬고'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접근을 허락하게 될 때 그것이 창조해낼 아름다운 가치들은 그 전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성공한 크기가 큰 만큼 시각장애를 가진 친구들은 또 한 번 아쉽고 또 한 번 소외되어 버렸습니다.

부디 숙고해 주시어 나이앤틱의 걸작을 보다 많은 사람들, 특히 눈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선물해 주십시오.

이사님과 회사의 결심은 게임은 물론 장애인권의 역사에서도 큰 변혁의 시작점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