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의 뇌는 정말 다를까

성실한 수컷 불스들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평소에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산에 서식하는 불스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불스들이 갑자기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카사노바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2017-01-31     정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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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영혼 공작소] 플레이보이의 뇌과학

카사노바와 함께 최고의 바람둥이로 손꼽히는 돈 후안 역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음악과 미술 등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중세 민간 전설에 처음 등장했던 이 바람둥이 귀족은 프랑스의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으로 유명해졌는데, 여자를 유혹했다가 죽이는 엽기적인 행각을 거듭하다가 성직자에게 처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평소 그의 보헤미안적인 풍모와 잔혹할 정도로 냉정한 성격은 여성들에게 '매혹' 그 자체였다.

아름답고 잔혹한 '양다리'의 달인들

이들은 종종 남의 애인을 가로채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고, 애인이 있으면서도 다른 이성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하는 '양다리'의 달인들이다. 바람둥이들에겐 왜 여성들이 계속 꼬이고, 여성들은 왜 애인이 있는 바람둥이의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그가 바람둥이임을 알고 있음에도 매력에 이끌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의 학자들은 그 이유를 생태계에서도 발견하려 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암컷에게 선호받는 수컷을 오히려 경쟁적으로 차지하려는 광경을 생태계에서는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취향이 제각각이라서 이성을 고를 때 다른 동성의 선택 기준을 고려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들도 거피처럼 남들이 선호하는 이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남이 좋아하면 나도 좋아한다

엄연히 일부일처제가 존재하고 바람을 피우는 행위는 부도덕한 일임에도, 인간 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바람둥이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플레이보이나 팜파탈은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노력해서 배웠거나 길들여진 것일까?

미국 에머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이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불스들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더니, 평소에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춰버렸다. 게다가 산에 서식하는 불스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불스들이 갑자기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몰두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카사노바의 바람기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포하고 있다.

몇 년 전 한 방송사의 의뢰를 받아, 바람기가 다분한 사람들의 뇌를 찍어 이성에 대한 반응을 살핀 적이 있었다. 제작진과 우리 연구실에서는 평소 바람기가 많다고 고민하는 지원자 6명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 실험을 실시했다. 결혼한 배우자나 사랑에 빠진 애인의 사진,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 매력적인 이성의 사진을 차례로 보여주며 뇌 활성화 차이를 알아본 것이다.

'노력파' 플레이보이들

역사적인 일례로,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 아내 조제핀에게 보낸 편지들을 후대 역사학자들이 분석하다가 나폴레옹이 그 편지들을 쓰게 된 동기를 알게 돼 크게 놀란 적이 있다고 한다. 적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몇 달 동안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용맹하고 혈기왕성한 나폴레옹은 요새로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종종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제 두 주 후면 도착할 테니 몸을 씻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는 명령을 전하기 위해서! 한번 상상해보시라, '적들을 향해 전진!'을 외치던 장수가 요새로 돌아와 씻지 말고 기다리라는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을. '암컷의 성적 향기는 남성에겐 거부할 수 없는 최면적인 매혹'이라는 프로이트의 표현대로, 나폴레옹도 죽음의 전장에서 조제핀의 향기가 가장 그리웠던 모양이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카사노바의 자서전 〈불멸의 유혹〉에 따르면, 카사노바는 여성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만드는 방법은 "여성에게 자신이 매우 사랑받고 있으며 매우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저 여성을 (매번!)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여성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일깨워주기만 하면, 그들은 놀랍게도 실제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 사랑은 여성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