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적 정체성과 전문가적 정체성

얼마 전 JTBC 기자가 정유라씨의 소재를 경찰에 알리고 체포 장면을 취재한 바 있습니다. 논란이 일었습니다. 훌륭한 방송사의 기자가 선의로 좋은 일을 했으니 괜찮다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 극우 언론사의 기자가 수배 중인 해고 노동자를 뒤쫓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경찰에 알리는 경우는 어떤가요? 기자의 가치관이 판단의 기준일까요? 간단치 않습니다. 시민으로서 신고하고 기자로서 취재한 제이티비시 기자의 선택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제기된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2017-01-18     윤태웅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는 동성애가 판단력, 안정성, 신뢰성, 직업 능력 등의 결함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동성애를 정신과 진단명에서 삭제하기로 하였습니다. 44년 전 일입니다. 일부 동성애 반대 단체가 논란을 이어가자, 2016년 3월엔 세계정신의학회가 다시 성명을 발표해 동성애가 질병이 아님을 거듭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의학자도 시민입니다. 동성애자에 관해 어떤 생각을 품든 그게 성소수자 차별의 근거만 되지 않는다면, 동료 시민으로서 제가 뭐라 할 순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자신이 어떤 자격으로 그렇게 판단하는지는 스스로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으리라 여깁니다. 자기 견해가 과학 공동체의 엄정한 검증을 거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믿음의 산물이라면, 거기에 과학의 권위를 얹어선 안 될 테니 말입니다. 이처럼 시민적 정체성과 전문가적 정체성을 분리하는 문제는 사실 과학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훌륭한 방송사의 기자가 선의로 좋은 일을 했으니 괜찮다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 극우 언론사의 기자가 수배 중인 해고 노동자를 뒤쫓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경찰에 알리는 경우는 어떤가요? 기자의 가치관이 판단의 기준일까요? 간단치 않습니다. 시민으로서 신고하고 기자로서 취재한 제이티비시 기자의 선택이 정당했다 하더라도, 제기된 문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가 있겠다 싶습니다. (참고로 제가 제이티비시 기자였어도 신고는 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이후의 영상을 방송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