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서울 | 서울의 미스터리

서울의 문화에는 여러 가지 모순된 면이 있다. 예를 들자면, 서울은 정부와 대기업의 월권행위에 대항하는 시민의 시위로 유명한데 반해 그 표면 아래에는 보수적인 군대 스타일의 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심지어 사회 문제에 항의하는 민간 단체의 조직 구조와 규율에서도 군대 문화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서울 문화 속에는 엄격한 위계질서와 연공서열 문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아마도 모든 한국 남자들이 경험하는 2년간의 국방의 의무 영향으로 명령을 따르는 것이 습관처럼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2015-05-11     Emanuel Pastreich
ⓒ한겨레

내가 경험한 서울 | <1> 방문객에서 거주자로,와 <2> 강남 스타일과 강북 스타일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서울 속 직원들이 (주로 여성)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하는지 알고 싶다면 서울의 우체국을 방문하면 된다. 상사들이 뒷자리에 앉아서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안 직원들은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서울 시민들은 문제를 창의적이고 실용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이 군복무 시절에 배운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명령에 따라 일을 처리한다. 시청 안에서도 그 표면 아래 존재하는 군대 스타일의 기강을 볼 수 있다.

서울의 거리는 군대 문화를 연상시키는 엄격한 명령에 따라 계획되었지만 한편으론 이상하게 디자인된 거리, 불규칙적인 유리창 또는 타일이 붙은 벽들이 도시의 유동성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잠실 롯데월드 근처에서 발견된 금이 간 벽이나 싱크홀은 무자비한 이윤 추구와 생각 없는 소비 행위가 만들어 낸 문제이다. 이 모든 문제들은 내가 친구에게 서울이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는 도시인가를 보여주려는 순간에 한꺼번에 나타났다. 서울을 설명함에 있어 서울이 단순히 강남과 강북의 구분을 넘어 여러 개의 도시와 여러 개의 공동체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하는 것이 아마도 더 적당할 수도 있다. 서울의 한쪽에서는 매우 높은 기준이 적용되고 있는 반면 도시의 또 다른 쪽에서는 인맥을 이용한 인사 및 허접함으로 고통 받고 있다.

나는 외국인들이 모여 한국 기업의 잘못된 경영형태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모임을 많이 보았다. 이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최고의 사회 기반 시설과 서비스를 즐기면서 한편으로 한국 조직 문화 속 전문성의 결여를 통탄한다.

효율성과 비효율성 그리고 세련미와 순수함이 이상하게 조합된 서울은 정말 매력적이다. 지하철이나 건축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현대화에 목을 멘 나머지 서울은 디테일을 간과하고 있다.

서울은 물리적 또는 개념적인 작은 마을들의 복합체이며 동시에 냉혹하고 힘든 대도시 이다. 서울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산과 한강 양쪽으로 펼쳐진 들판으로 인해 그 어떤 대도시 보다 녹지대가 많다. 반면 도심은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거나 꽃이 심어진 화분조차 찾아 보기 힘든 건물로 꽉 찬 거리가 대부분이다. 콘크리트, 유리, 철골이 숲을 이루고 있는 서울은 깊은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일까, 서울은 세계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깊은 동지애를 갖고 있으며 같이 일하는 동료나 학교 동창 그리고 친척들과 긴밀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서울에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직장에서는 작은 프로젝트라도 상사나 동료의 서명이 10개는 필요하다. 서울에 살고 있다면 고등학교 동창생을 비롯하여, 자식의 친구 부모, 군대 동료, 같은 시기에 공무원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만남을 가져야 한다. 실제적인 만남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만 이 또한 서울이 갖고 있는 인간적인 면이다. 서울이란 대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어떤 마을 형태와도 비슷하지 않은 가상의 마을을 만들고 있다. 아마도 한국의 급격한 도시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의 농촌과 같은 마을의 의미를 창조하게 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