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무너졌던 결정적인 이유 3가지

2017-01-05     PyungSeok Koh

조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왕조였다. 1392년에 건국되어 1910년에 망할 때까지 무려 518년이나 이어졌다.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으나 하늘이 돕고 백성이 도와 극복을 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이후의 상황을 보면, 제대로 된 국가라는 생각이 안 들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알듯이 양반의 수탈은 극심했고 국가적으로 발전과 변화에 둔했다. 조선은 결정적으로 왜 무너진 것일까? 제도적 측면에서 접근한 책이 있어서 소개를 할까 한다. 조선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이야기다.

1. 성리학에 지나치게 매몰되었다.

…. 18세기 말에 박제가는 ‘박학의’에서 성리학에 매몰된 조선 사회를 공리공담(空理空談)하는 사회, 실질적인 논의를 전혀 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는 “다들 공리공담에는 유능하지만 실제 사무에는 무능하며, 목전에 닥친 일을 계획하는 것에는 온갖 수고를 하지만 큰 사업의 설계에는 어둡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과 일본을 다녀온 사람들은 많으나 “다른 나라의 훌륭한 법을 하나라도 배워 오는 자가 아예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왜놈이니 되놈이니 비웃기만 한다”고 그들의 행태를 비판했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저)

2. 지식은 국가가 독점했다.

…. 그런데도 이런 위대한 정책 제안서가 실제 정책에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학자와 관료들이 1694년(숙종20년), 1741년(영조17년), 1750년(영조26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상소를 올려 ‘반계수록’을 간행하고 정책으로 채택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이런 건의는 조정에서 계속 무시되었다. ‘반계수록’을 책으로 간행하는 데에는 많은 건의가 누적되면서 거의 100년이 소요되었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저)

3. 책임을 묻지 않는 정치로 운영되었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저)

조선의 지배층은 생각보다 무책임했다. 위정자들의 준비 부족으로 임진왜란을 겪어 국토와 백성에 큰 피해를 입혔음에도 그 누구도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상도 엉망이고, 벌도 멋대로였다. 이런 제도 하에서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끼리끼리 어울리고 해 먹는 폐쇄적 제도가 문제였다. 결국 포용 정신이 더욱 사라졌다. 당쟁은 격화되고 조선은 점차 수렁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