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언론계에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정유라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JTBC 기자는 현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체포되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도한 것은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자이기에 앞서 하나의 시민이고, 그의 신고는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개인의 결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 그게 보도윤리다. 그런 게 2017년 언론계에 남아 있다면 말이다.

2017-01-03     박상현

1.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방송사가 보도 윤리를 어겼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보도 윤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여서 사용하지 못할 뿐, 이제까지 규범으로 여겨져 온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가볍게 던져 버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2.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자이기에 앞서 하나의 시민이고, 그의 신고는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개인의 결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기자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트위터로 무장한 일반시민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손발을 다 묶는 원칙을 지켜야 할까?

3.

"소말리아에서 구호활동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구호요원이 물을 나눠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빨리 나눠주지 못하면 폭동이 날 것 같다는 거다. 기자는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가?"

'요즘 학생들'이 '보도를 하는 기자는 자신이 취재하는 상황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이티에서 지진피해를 보도하던 앤더슨 쿠퍼가 생방송 도중에 부상당한 아이를 구조하며 영웅이 되는 시대에 사는 기자들에게 냉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요구하는 건 고루해 보인다. 기자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트위터로 무장한 일반시민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손발을 다 묶는 원칙을 지켜야 할까?

야생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먹이사슬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

4.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자연 사진작가의 수상작에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끼새들이 가지에 줄줄이 매달린 장면은 자연에서 일어나기 힘든 장면이고, 그것을 우연히 목격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어두운 곳에 둥지를 짓는 새들을 찍기 위해 가지를 쳐냈고, 심지어 본드로 다리를 붙였다는 혐의까지 받았다).

사슴 한 마리를 살려준다고 아프리카의 생태계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선례는 다른 개입을 불러온다. 카메라맨들이 너도나도 불쌍한 사슴 살리기에 나서면서 유튜브에서 스타가 되기 시작하면 아프리카의 생태계는 영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정유라는 체포되었어야 한다, 그것도 진작에.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

5.

특히 자신의 신고로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시청률이 올라간다면 그때부터는 '이해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는 심각한 문제 마저 낳는다. 신고하고 체포되는 장면까지 방송한 JTBC 보도는 재난 현장에 있다가 갑자기 도와줘야 하는 위치에 처한 기자의 윤리를 논하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한 명백한 이해의 충돌이다.

보도를 하기로 했다면 신고하지 말았어야 하고, 신고하기로 했으면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

6.

같은 이유로 JTBC 기자는 "그럼 눈 앞의 범인을 신고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항변해서는 안된다. 보도를 하기로 했다면 신고하지 말았어야 하고, 신고하기로 했으면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양심이 울어도 그게 프로페셔널리즘을 지키는 대가다.

비록 JTBC는 선한 의도로 문을 열었겠지만, 문이 한 번 열리면 그리로 쓰레기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7.

하지만, 그 보도가 앞으로 한국언론에 중요한 선례를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제까지 아무도 넘어서지 않았던 선을 넘었고, 열지 않았던 문을 열었다. 비록 JTBC는 선한 의도로 문을 열었겠지만, 문이 한 번 열리면 그리로 쓰레기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