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조지 마이클을 잃은 것이 특히 안타까운 이유

2016-12-28     김도훈

2016년의 정치 및 사회 담론은 컴퓨터 스크린 뒤에 숨어서 자기들이 정한 유족하고 낡은 기준에 맞춰 살지 않는 여성들에게 벌을 주려 하는, 억울해 하는 불안정한 남성 군단이 지배했다.

크리스마스에 팝 아이콘 조지 마이클이 세상을 뜬 것이 너무나 슬픈 이유는 어쩌면 이걸지도 모르겠다. 지금 돌아보면, 올해 프린스와 데이비드 보위가 사망한 것이 유독 아프게 느껴지는 것도 이것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언뜻 보면 이 두 가지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한 번에 단 한 가지 주제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모두가 믿는 것 같은 소셜 미디어의 세상에서, 레너드 코헨, 앨런 릭먼, 자자 가보르 같은 전설을 잃는 것이 슬프긴 해도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하기란 참 쉽다.

그러므로 올 한해 동안의 대중 문화의 우울한 순간들의 배경 음악이 되었던(안타깝게도 체인스모커스는 2016년에 제일 많이 들린 백인 남성들의 헛소리가 되지 못할 것 같다) 정치적 혼란의 렌즈를 통해 대중 문화를 보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두 세계는 종종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이 두 세계는 서로 힘과 깊이를 주고받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의 지금 모습을 더욱 온전히 보여준다.

이 세 명의 뮤지션을 유독한 생각들에 대한 흠결없는 전사로 봐야 한다, 그들의 개인적 행동에 의문을 던지지 말고 추켜세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양성 외계인 같았던 데이비드 보위, 창의적인 젠더로 열정을 요란하게 표현했던 슈퍼스타 프린스, 퀴어임을 거침없이 드러냈던 아이콘 조지 마이클를 알았던 것이 나에겐 굉장한 자신감과 힘을 주었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순응하지 않는 사상과 정체성을 무시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문화 속에서 그들은 큰 힘이 되었다. 그들의 존재는 즐겁고 신나며, 계몽적이면서 펑크적이었다.

그는 1998년에야 커밍아웃을 당했지만, 그전에도 전통적 이성애의 과시적 요소를 종종 비틀곤 했다. ‘Faith’ 비디오에서 로커빌리 기타에 맞춰 마이클은 80년대 초반의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옷을 입고 걸어다닌다. 재킷부터 선글라스, 주크박스까지 이 비디오의 모든 면은 퀴어스럽다. 약 4분 동안 비디오는 흑백과 컬러를 오가며, 조지 마이클은 시청자를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상징이 의미 없어지는 지점까지 오즈의 마법사처럼 끌고 간다.

내게 있어서는 저 세 아티스트들 중 조지 마이클이 가장 매혹적이었다. 그는 젊은 게이 남성들이 추구해야 한다고 강요받는 남성성을 자신의 페르소나에 포함시켰지만, 이성애 규범성의 예외로 행동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고 그 남성성을 자신의 퀴어성에 맞도록 전복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가 남성성의 의미를 비틀었던 것이 별로 놀랍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는 문화계의 여러 퀴어 인사들이 등장할 수 있는 밑작업을 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성애 남성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이미지를 사용해 ‘이성애자로 보이게’ 했던 것은 옷만 조금 다르게 입으면 그가 게이라는 모든 루머를 무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지 마이클이 평화롭게 숨졌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그가 앞으로도 쭉 평화롭게 쉬길 바란다.

허핑턴포스트US의 Trying To Keep The Faith: Why Losing George Michael Hurts Especially Badly In 2016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