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교수 징역구형이 지식인에게 주는 경고

지식인들이 이 문제가 사법처리로 가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와 시각에서 진지하고 용기있게 대응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궁금하다. 필자가 지식인들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을 때, 주변인들은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면서도 평을 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무시전략을 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점을 볼 때, 지식인들의 학문적 공론장 역할은 거의 하지를 못했고, 따라서 이번 사태가 사법처리로 이어진 데에는 지식인들의 책임방기가 있었고 이것은 지식인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2016-12-27     국민의제
ⓒ뿌리와이파리

글 |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비교정치학)

또한 검찰은 "박 교수는 '매춘' '동지' '자발' 등 표현의 뜻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일반 대중을 상대로 출판한 도서에서 이 같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해 사실을 왜곡했다"며 "이는 미필적 고의를 넘어서서 확정적 고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유하 교수의 변호인 측은 "검찰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박 교수가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부라고 서술했다'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박 교수를 비난한 것이 이 사건"이라며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변론했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어쩌다가 이런 사태가 발생했으며 어떻게 처리되는 것이 바람직했을까? 필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몇 가지 의견을 달고자 한다.

또한 역으로 오죽했으면 궁박한 처지에 몰린 할머니들이 고소를 했겠는가? '학문의 자유'와 '학문적 공론장'을 구십 먹은 고령의 할머니들에게 요구하는 게 옳은 일인가? 학문의 자유와 학문적 공론장은 할머니가 아닌 지식인들의 몫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도 회의가 든다.

박유하 교수가 일본을 '제국'으로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을 '제국의 위안부'로 본 것은, '제국'과 '제국주의'의 차이를 몰라서일 것이다.

박교수가 인문학과 함께 사회과학적 학문적 적실성을 갖는 접근을 조금이라도 고려했다면, 당연히 책 제목을 "일본제국주의 성노예 피해자들"로 정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연 "제국의 위안부"인가? 아니면 "일본 제국주의 성노예 피해자"인가? 근대 일본은 '제국'일까? 아니면 '제국주의'일까? 이 문제가 학문적으로 간단치 않은 논쟁사항인 만큼, 심사숙고하고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근대 일본은 '제국'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제국주의'로 전락한 국가이다.

를 쓴 헤어프리트 뮌클러 교수와 아시아의 석학으로 <제국의 구조>를 쓴 가라타니 고진 교수 그리고 <제국의 미래>를 쓴 에이미 추아 교수 등에 의하면, '제국'은 '제국주의'와 확실히 구별된다. 그리고 이들 석학들은 공통적으로 근대 일본이 마이클 도일이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이라 부른 '문명의 단계'를 넘지 못해 제국단계의 도달에 실패하여 제국주의로 전락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팽창단계에서 문명의 공고화 단계로 이행하는 데 실패하여(즉, 아우구스투스의 문턱을 넘지 못해) 주변국과 식민지 민중의 저항에 놓여 있는 나라이다. 즉, '제국주의'는 제국을 추구하지만 보편적 가치를 통한 지배에 실패한 황제의 나라다.

박교수가 석학들의 일본 제국주의 규정을 수용했더라면 '제국의 위안부'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성노예 피해자'라로 규정하고, 그런 관점에서 근대 일본정부의 문제점을 봐야 했을 것이다. 특히, 박유하 교수는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번역할 만큼, 학문적 인연도 있었다는 점에서 석학들의 언급을 엄밀하게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 문제는 결국 1910년 조선에 대한 일본의 강제병탄사건을 제국의 팽창관점에서 강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국제법상 하자가 없는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조치로 보느냐 아니면 문명의 공고화단계에 실패한 제국주의 관점에서 강제침탈에 의한 병탄으로 국제법상 불법적인 무효조치로 볼 것인가 하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당연 박교수는 '제국주의 일본'이 아닌 '제국 일본'으로 보고 있어 일본을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로 보는 피해할머니들과 충돌한다.

즉, 박교수는 1910년 식민지 지배가 일본의 합법적 조치였기 때문에, 국가와 정부차원이 아닌 정치인 개인 혹은 범국민적 차원에서 도의적 책임 차원에서 위로와 사과와 보상으로 처리하면 되는 문제로 본다. 하지만 일본을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로 보는 피해 할머니들은 당연 국가의 불법성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고, 법적차원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국가배상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박교수는 일본을 제국으로 보기에, 제국주의 국가가 저지르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일은 없으며, 대부분의 경우는 식민지 조선의 업자나 포주들이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박 교수는 자신의 시각과 반대되는 위안부 피해할머니와 '정대협'을 비판한다. 하지만 박교수는 자신의 시각이 옳다고 주장하기 이전에 방법론적으로 엄밀하게, 성노예 피해 할머니라고 증언하는 사례수보다 위안부가 군인과 동지적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되는 '더 많은 사례수'를 반증해 보여주는 일이 필요했다고 생각된다. 유감스럽게도 박교수는 이것에 실패하고 있다. 실패한 배경은 박교수가 일본이 제국주의가 아니라 제국임을 입증하려고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 오랫동안 유학해서 쌓아올린 박 교수의 시각은 종전의 주류시각인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적 시각과 다른 일본 주류적 입장을 내면화한 '제국의 시각'에서 일본의 제국주의 만행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그런 시각에서 박교수는 제국주의에 약탈당하는 성노예 피해자보다 제국에 봉사하는 위안부임과 미개한 조선을 문명화하는 일본(또 다른 식민지근대화론)을 입증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해할머니들이 헐벗은 몸을 통해, 근대 일본은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라 증언하고 있다.

글 | 채진원

2009년 경희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민주노동당의 변화와 정당모델의 적실성"이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의 교수로 '시민교육', 'NGO와 정부관계론' 등을 강의하고 있다. 대표저서로는 『무엇이 우리정치를 위협하는가-양극화에 맞서는 21세기 중도정치』(인물과 사상사, 2016)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