슘페터 호텔과 개츠비 곡선, 그리고 경제민주화

미국의 높은 사회적 이동성과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믿음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고 신화에 불과했음이 최근 밝혀졌다. 2012년 당시 미국의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이던 앨런 크루거는 의회에 보내는 [대통령의 경제보고서]에서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소개하였다. 미국의 사회적 이동성이 유럽보다 낮다는 사실을 보여준 개츠비 곡선은 미국에서 굉장한 논란거리가 되었다. 미국예외주의와 아메리칸 드림은 허상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크루거는 이러한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고 경제이론에 부합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현재의 불평등이 클수록 교육과 연줄을 통한 자식세대의 불평등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2016-12-27     유종일
ⓒDimitrovoPhotography via Getty Images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 12. 슘페터 호텔과 개츠비 곡선, 그리고 경제민주화

과연 슘페터의 비유는 현실에 적용이 될 수 있을까?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환상에 불과한 얘기는 아닐까? 오랫동안 많은 미국인들은 슘페터 호텔이 미국경제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믿었다. 미국은 유럽에 비해 소득불평등이 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처럼 계급이 고착화되지 않고 유동적이어서 사회적 이동성이 높다고 믿었다. 미국은 '기회의 땅'이고 누구나 열심히 노력만 하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미시시피 농촌의 가난한 십대 엄마에게서 태어나 밀워키의 슬럼가에서 자라며 아홉 살 때 강간을 당하고 임신까지 했던 가엾은 소녀가 굳은 결의로 꿈을 좇아 노력한 결과 미국 최고의 토크 쇼 호스트가 되고 배우, 저술가, 프로듀서, 자선살업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거대한 미디어 왕국의 소유자가 되기에 이르렀다는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의 얘기는 한 전형적인 예이다. 미국에는 이런 종류의 '개천에서 용이 난' 스토리가 무수하게 많으며, 이를 곧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1) 아래 그림에 나온 대로 국제비교를 해보면 소득불평등과 세대간 계층고착성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계층상승의 심볼로 여겨지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이름을 가져다 붙인 것이다. 세대간 계층고착성은 세대간 소득탄력성, 즉 부모세대의 소득이 자식세대의 소득에 미치는 영향으로 측정한다. 이 영향이 작을수록 계층이동성이 크고, 이 영향이 클수록 계층고착성이 큰 것이다. 개츠비 곡선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 소득불평등이 낮은 나라들에서 계층이동성이 크고 (즉, 계층고착성이 낮고), 선진국들 중 불평등이 심한 미국은 계층이동성이 낮으며, 브라질, 칠레, 페루처럼 불평등이 매우 심한 개도국에서 계층이동성은 매우 낮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IMAGE2]

2)

3) 불평등의 심화는 불공정을 초래하고, 이것이 다시 불평등을 더욱 악화하는 '약탈 불평등'의 악순환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러한 악순환이 관찰된다. 재벌의 세습과 이들의 정경유착에 의한 지대추구 혹은 이권추구가 가장 두드러진 사례다. 기득권자들의 불공정을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정유라의 발언이 시사하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 의한 이권추구가 만연해 있다. 아마도 개츠비 곡선의 이면에는 '약탈 불평등'의 악순환도 작동하고 있을 것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은 12회로 연재를 마칩니다.

1) Economic Report of the President, transmitted to the Congress, February 2012 (http://www.nber.org/erp/ERP_2012_Complete.pdf)

3) Joseph E. Stiglitz, The Price of Inequality: How Today's Divided Society Endangers Our Future, W. W. Norton & Company, 2012.

[운칠기삼(運七技三)과 불평등의 경제학]

1. 어느 CEO의 야릇한 이혼소송과 '행운의 보수'

2. 운의 사회적 기능과 '카지노 자본주의'

3. 마태효과와 시장경제의 '운칠기삼'

4. 승자독식 경쟁과 운의 비중

5. 특별한 기회라는 행운

6.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는 행운

7. 타고난 재능과 성격이라는 행운

8. 능력주의의 함정과 운칠기삼의 윤리학

9. 베탕쿠르와 이재용, 그리고 세습자본주의

10. 돈이 실력이 되는 사회와 정실자본주의

11. 운과 불평등의 분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