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이 아니라 '혁검'이다

검사 출신 수석비서관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사정기관을 지휘·통제하면서 감시와 협박, 보복을 일삼아온 민정수석실의 전횡과, 먼지떨이 방식으로 주문형 죄를 만들어내며 권력의 입맛에 맞춰온 검찰의 칼춤이 없었어도 재벌 총수가, 고위 공직자가 그렇게 순종적으로 대통령과 그 측근의 무리한 요구를 따랐을까. 청와대의 민정수석실을 없애거나 대폭 축소하고, 검찰의 무소불위를 제어하는 제도 개선은 개헌에 비해 하기는 쉽고 효과는 매우 크다.

2016-12-22     오태규
ⓒ뉴스1

제18대 대통령 박근혜가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뒤 정치권의 화두가 '대개론이냐 개대론이냐'로 수렴되고 있다. 이른바 '대개론'은 대선을 먼저 치르고 개헌은 나중에 하자는 주장이고, '개대론'은 대선보다는 개헌에 무게중심을 두는 입장을 말한다. 지금 당면한 상황을 보는 시각과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대개론과 개대론으로 정치권이 나뉘어 가고 있지만, 나의 결론을 미리 밝히자면 대개론이 맞는다고 본다.

둘째, 정치권이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개헌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오지만 거기엔 함정이 있다. 개헌론이 우세하다 해도 한발 더 들어가 '어떤 내용의 개헌이냐'를 물으면 전혀 의견의 합치가 이뤄져 있지 않다. 권력구조만 하더라도 4년 중임 대통령제, 이원집정제, 내각제로 거의 삼분되어 있다. 이런 상태론 개헌의 추동력이 생길 수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쉽게 이뤄진 것을 상기하며 당장에라도 합의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착각이다. 당시는 '독재 타도, 직선 쟁취'라는 거리의 일치된 구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민심이 대통령 직선으로 통일되어 있었고, 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등 정치 주역의 이해도 맞았다. 지금은 8차까지 진행된 촛불집회에서 개헌의 '개' 자도 찾기 어려울뿐더러 주요 정치인의 생각도 제각각이다.

개헌은 권력구조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변화를 어떻게 반영할까까지 고민하면서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풀어가야 할 일이지만, 이번 대통령의 실패를 가져온 '권력의 사유화' 문제만은 당장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대통령과 그의 측근이 고위 공무원과 기업 총수들을 주머니 속의 공깃돌처럼 마음대로 부려도 아무 저항도 못 하고 받아들이도록 하는 힘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사유화가 그 정점에 있고, 바로 그 밑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며 '권력의 개' 노릇을 해온 검찰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검사 출신 수석비서관이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사정기관을 지휘·통제하면서 감시와 협박, 보복을 일삼아온 민정수석실의 전횡과, 먼지떨이 방식으로 주문형 죄를 만들어내며 권력의 입맛에 맞춰온 검찰의 칼춤이 없었어도 재벌 총수가, 고위 공직자가 그렇게 순종적으로 대통령과 그 측근의 무리한 요구를 따랐을까.

* 이 글은 한겨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