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박타푸르의 염소 행렬

2014년 4월 말이니 딱 작년 요맘때, 오랫동안 맘속에 품어왔던 히말라야 산을 걷고 왔다. 미리 네팔에 다녀와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반, 작년에 안 갔으면 올해 거기서 딱 지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복잡함 반이 교차한다. 작년에 만나 함께 팀을 이뤄 산에 올랐던 현지 가이드와 셀파들은 모두 카트만두에 산다고 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처럼, 아침마다 함께 찌아를 마시고, 우리나라 소주처럼 생긴 네팔 술을 저녁마다 나눠 마시고, 마지막 날에 롯지에선 비싼 음식 중 하나인 신라면 파티를 열었더니 고마워하면서 먹던 그들의 순한 눈빛이 자꾸만 떠오른다.

2015-05-07     이영미

경유지이긴 하지만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를 그냥 떠나기 아쉬워 하루 시간을 내서 15세기 중세 도시라는 박타푸르에 들렀다. 그토록 오래된 마을이라면 우리네 민속촌처럼 가짜 모델하우스만 잔뜩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별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두르바르라는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펼쳐진 골목골목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살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채소며, 옷가지며, 도자기 같은 걸 내놓고 파는 전통 시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좋았다. 과연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여전히 살아 숨쉬는 매력적인 유적이었다.

어디까지 염소를 끌고 가는지 가늠은 되지 않았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따라가 보기로 했다. 이방인인 내가 거기에 갈 수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한 염소 주인을 몰래 뒤따라갔다. 몇 번 길을 놓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염소 행렬을 따라 도착한 곳은 커다란 녹색 연못 주위의 빈터였다. 차마 목을 참수하는 장면은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잘린 염소 목으로 상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내장과 고기를 구워먹는 현장은 목격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아무래도 그날 죽은 염소만도 백 마리는 넘을 것 같았다.

아직도 염소 목을 받아먹는 힌두신이여, 당신의 종들에게 제발이지 더 이상의 고통을 주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