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간다 | 제주에서 깻잎 농사짓는 강순희·김만호 씨

강순희 씨는 "내 스스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게 농사지으면서 가장 좋은 점"이라고 했다. "농한기가 없어서 파닥파닥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농사꾼은 부지런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내가 나가서 이걸 해야지' 하면 만사 제치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때 해야 하는 농사일을 방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일을 주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고, 그게 남편과 동의가 되니까 같이 할 수 있어요."

2016-12-16     살림이야기

제주 생드르구좌공동체에서 깻잎 농사짓는 강순희·김만호 씨

글 이선미(살림이야기 편집부) | 사진 류관희

"우리는 성격은 달라도 농사는 맞아서 해요"

"지난 10월 태풍 '차바' 때문에 하우스 비닐이 다 걷히고 피해가 심했어요. 그거 수습하느라 이제야 정신 차리는 거예요."

올해 마흔여덟 살인 강순희 씨와 쉰한 살인 김만호 씨는 모두 제주 출신. 애월읍 상가리가 고향인 강순희 씨와 이곳 김녕 사람인 김만호 씨는 농민회 안 젊은 사람들끼리 만든 청년모임에서 만났다.

1994년 결혼하고는 김만호 씨의 부모님과 함께 관행농으로 마늘, 양파 등을 주로 지었다. 그러다 농사를 분리하고 2000년부터 친환경농사를 시작했다.

농부들이 친환경 유기농사를 시작하는 계기에는 공통점이 많다.

"친환경으로 깻잎 농사를 하다 보면은 곰팡이병으로 잎이 썩거나 포기가 비는 경우가 많이 생겨요." 김만호 씨는 밭고랑을 다니며 병든 잎과 포기를 따고 뽑는다.

깻잎 줄기의 마디가 선명하게 보이는가? 아래에서 세 번째 마디까지에 나는 잎은 다 버리고 그 윗마디에 나는 잎부터 물품으로 낸다. "하나 둘 셋, 이거까지는 딱 버려야 돼요."

잘 자란 깻잎은 똑똑 따서 30장씩 봉지에 넣는다.

"제주는 섬이라서 물류비용이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한살림을 알게 되고 공급도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한살림운동의 지향 등을 공유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남은 사람들의 의식은 높아졌어요. 생산자가 재생산되는 구조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지켜 가는 거예요. 동네에서도 친환경농사 다 알죠.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왔어도 이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그만큼 어려워요."

"농민이 생태적인 공간에서 경제활동 등 모든 걸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너무 힘들고 사회구조 자체가 그렇지 않은 모습이 없잖아 있더라도 나는 그게 더 좋은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 생각을 버리지 못했죠."

"하나는 가족, 또 하나는 일하고 관계를 맺는 거요. 나머지는 이 길을 가기 위한 플러스알파일 뿐이죠. 가다 보면 본보기도 있을 거고 갈등도 하겠죠. 그래도 내가 선택한 건 이거예요. 끝까지 갈 겁니다."

"우리는 성격은 달라도 농사는 맞아서 해요."

수확에 열중하다 보니 생각지 않게 부부가 맞절을 하게 됐다. "우리는 모든 걸 같이 결정하고 같이 해요. 처음부터 그렇게 해 왔기 때문에 인증 같은 거 받을 때도 하나는 남편 이름으로, 새로 하는 건 내 이름으로 하고 그래요." 강순희 씨의 말을 들으니 부부가 같은 높이로 허리를 숙인 게 우연이 아닌 듯도 하다.

채소 썩히지 않아 좋아

"친환경 학교급식 초기에는 한살림에도 물건을 내지 않을 때라 되게 막막했어요. 2004년에 학교급식이 시작되면서 해마다 공급량을 늘려 가긴 했지만 다 소비가 안 돼 갖고 어려웠지요."

전에는 친환경제제가 없어서 진딧물이 생기면 그냥 폐작해야 했다.

레몬은 잎에서도 향이 짙게 나서 천연 방향제로 좋을 것 같다. "비닐하우스 한 동에 레몬 나무를 심어 놨어요. 내년 3월에 수확을 기대하고 있어요."

손가락 굵기만 한 당근은 한창 크는 중. 내년 2월 정도에 수확할 것이다.

"줄기의 세 마디까지 나는 잎은 따 버려야 해요. 네 마디부터가 상품이 되는 거예요."

"보통 1년에 두 번 주기로 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7~8월에 파종한 건 40일, 그 밖에는 50일에서 두 달 정도 지나면 수확할 수 있어요. 깻잎은 여름에 잘 자라는 작물이에요. 그래서 여름에는 500평 하우스 전부에 농사짓는 게 아니라 300평 정도만 해서 생산량을 맞춰요."

"온도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추워도 바람이 많이 불면 냉해가 얼마 없는데, 춥고 바람이 막 불다가 따뜻해지면 바람이 팍 잦잖아요? 새벽녘에 어깨가 싸한 느낌이 나면 분명히 냉해가 와요. 그때 온도계를 보면 한 2~3℃에도 오더라고요."

"엄청 부지런히 했어도 자연재해가 오면 그냥 무너져요."

"우리가 깻잎 생산지로는 후발 주자예요. 충남 아산 지역에서 먼저 했죠. 그래서 소비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아산 물품이 먼저 공급돼요. 무 같은 경우는 제주에선 겨울에 나고 다른 데선 봄이나 여름에 나니까 생산 시기가 겹치지 않아요. 그런데 깻잎은 그렇지 않으니까 산지를 구별하지 말고 같이 가면 좋겠어요. 우리가 한살림에 공급한 지 7~8년 됐거든요. 이제는 생산지를 동등하게 대해 주면 좋겠어요."

'제주니까 당연히 귤 농사를 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부부는 귤은 기르지 않는다. "여기 김녕은 귤을 그다지 안 해요. 구좌 지역에 귤 농가가 제일 없다고 보면 돼요." 이건 김만호 씨 후배가 먹으라고 준 극조생 감귤.

강순희 씨가 간식으로 토박이 물고구마를 구워 주었다. 토박이의 맛은 이렇게 진하단 말인가!

사람에 힘입어 나아가자

"농한기가 없어서 파닥파닥하긴 하지만 그래도 마음먹으면 뭐든 할 수 있어요. 농사꾼은 부지런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내가 나가서 이걸 해야지' 하면 만사 제치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고 제때 해야 하는 농사일을 방치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고 하고자 하는 일을 주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고, 그게 남편과 동의가 되니까 같이 할 수 있어요."

"어쩌다 보니까 토박이씨앗을 지키는 일을 7~8년 동안 하고 있어요. 채종포 일곱 곳에서 30~40가지 씨앗을 수확해 가지고 지역 주민들과 나누죠."

라는 방송 프로그램도 했다.

지역 주민들은 농민회 활동을 하는 부부를 어떻게 바라볼까.

강순희 씨는 "이웃들이 우리가 '박근혜 절대 안 된다'라고 누누이 얘기할 때는 말을 안 듣다가 이제 '아이고, 그때 들을걸' 한다"고 했다.

강순희 씨는 여성농민의 지위를 향상하는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마지막으로 한살림 30주년을 함께하는 생산자로서 하는 생각을 물었다.

또 하나, 사람에 대해 더 열려 있으면 좋겠다.

원래 비어 있던 들판이 아니다. 태풍이 쓸고 간 당근밭이다. "이번에 태풍 피해가 컸어요. 그래도 농사지으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땅은 자연재해에 망가졌다가도 어느 순간 햇빛과 땅심으로 다시 살아나잖아요. 우리도 그러면 좋겠어요."

* 이 글은 살림이야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