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이 배웠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인가?

내가 '배운 여자'이기 때문에 나는 저학력의, 빈곤층 남성들의 젠더 감수성을 비판할 자격을 박탈당하는가? 어째서 '젠더'가 계급을 형성하고 여기에서 착취와 차별과 억압이 일어나고 있음은 은폐되는가? 다시 말하자면, 어째서 젠더의 계급-또는 여성성의 계급('창녀'와 '모성'의 스펙트럼 같은)은 계급의 문제로 논의되지 않는가? 블랙넛이나 정중식처럼, 소위 '루저' 감성의 혹은 실제로 남성성 경쟁에서 상대적 약자인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나 비하, 혐오 발언을 할 때 이것이 논란이 되면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2016-12-16     짐송
ⓒArman Zhenikeyev - professional photographer from Kazakhstan via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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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식 씨가 자신의 문제를 계급으로 정당화하고자 한 것은 저학력, 빈곤층 혐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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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이 배웠기 때문에 페미니스트인가?

대학원생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소위 '명문대' 학생들이 차별적이고 나쁜 사상을 당당하게 과제로 써오는 사례를 손쉽게 모을 수 있다. 내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공부할 때 도움을 받았던 분들의 사상의 깊이도 최종 학력과 무관하다. 잡지를 만들면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열린 생각과 풍부한 사유의 발전기를 돌릴 줄 아는 이들은 학력도 직업도 정체성도 제각각이었다. 나의 피와 살과 뼈를 만든 가족의 계보에서 나에게 어떤 기질이나 '애티튜드'를 물려준 강한 여성들 중 몇몇은 학교 근처에도 못 가봤다. 따라서 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 빈곤하고 조야한 언어로 얄팍한 생각을 전시하는 이들을 손쉽게 '못 배운' 이들로 포착하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다른 의미의 학벌주의이며, 저학력 혐오일 수 있다. 빈곤층이나 저학력층이 현상을 적절하게 진단하고 이해할 언어나 기반을 갖추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이다. 그러나 입체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을 구조의 차원에서만 해석하려는 것도 안일한 접근이다. 정중식 씨가 자신의 문제를 계급으로 정당화하고자 한 것은 저학력, 빈곤층 혐오이다.

'루저' 남성이 혐오 발언을 할 때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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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넛이나 정중식처럼, 소위 '루저' 감성의 혹은 실제로 남성성 경쟁에서 상대적 약자인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착취나 비하, 혐오 발언을 할 때 이것이 논란이 되면 왜 그들보다 계급이 높은 여성을 기어이 '가정'하고, 여성이 반드시 약자는 아니라는 아무말 결론을 이끌어내는가? 그 정도의 '루저' 여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에서 지워놓고, '루저' 여성이 가시화되거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짓밟아 놓고. 여자 루저, 여자 정중식은 가능한가? 케이팝 스타에서 준수한 외모의 여성 참가자들이 살쪘다며 혹평 당하는 현실에서, 여성이 정중식처럼 봉두난발을 하고 아무 옷이나 입고 체중조절이나 외모 관리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무대에 서고 그 자체가 '진정성'을 뒷받침해주어 승승장구하는 서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잡지에 관한 자리에 나갈 때는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골라 입는다. 내가 '표준 체중'(...)을 벗어나는 순간 내가 주장하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는 것이 어떤 조롱거리가 되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이다.

여성상위시대라고 주장하려면 계급이 높은 여성과 계급이 낮은 남성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동일한 물질적 토대에 있는 남성과 여성 중 여성이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는지 비교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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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상위시대라고 주장하려면 계급이 높은 여성과 계급이 낮은 남성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동일한 물질적 토대에 있는 남성과 여성 중 여성이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는지 비교해 보아야 한다. 동일한 임금을 버는 남성은 아무도 여성의 위치로 '내려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물질적 계급 차별뿐만 아니라, 더 가혹하고 은밀하고 일상적인 젠더 계급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계급에 있는 여성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목격하거나, 그 여성이 '그런 취급'을 받는데 일조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때 '가난한 여자는 몸 팔면 되지 않느냐'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사람은 그냥 지나가시라. 그 말이 뭐가 문제인지 스스로 생각하는 것도 포기한 이들이 여기까지 읽을 리도 없지만.)

젠더 문제에 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여성들은 '만만한 놈들'만 골라 패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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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문제에 관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여성들은 '만만한 놈들'만 골라 패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남성 사회에서 약자인 것은 여성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고려할 요소도 아니다. 살아있는 인간인 한 잘못은 하기 마련이고, 특히 무지로 인한 잘못은 언제든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에 대해서 언제나 상냥하게,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이해해주어야 하는 주체는 여성이고 대상은 남성이다. 잘못의 주체의 성별이 바뀌면, 남성은 징벌과 훈계의 자격을 양도 받고 여성은 깨끗한 수건을 들고 목을 치길 기다리는 사무라이처럼 숙연하고 묵묵해져야 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이입하고, 누구를 연민하도록 훈육되고 길러지는가? 그때 사라지는 맥락은 무엇이며, 그 안에는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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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에게 이입하고, 누구를 연민하도록 훈육되고 길러지는가? 그때 사라지는 맥락은 무엇이며, 그 안에는 누가 있는가? 어째서 누군가는 언제나 이해와 연민과 포용의 대상이 되는데, 누군가는 비극성을 극대화하는 도구이거나 분노와 애환을 푸는 샌드백 정도로만 존재하는가? 여성이 대상화된 샌드백이나 도구가 아니라, 욕망이 있고 고통을 느낄 줄 알며 이중의 계급 차별 속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애 쓰고 차별에 분노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인정받기는 왜 이렇게 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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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